유성화 < 동아텔레비젼 대표이사 >

한보 사건과 청문회로 이어지는 우리의 오늘이 정직하게 살아가는 많은
서민들의 마음에 씻지 못할 또 하나의 상처를 남기며, 짧기만 한 봄은
여름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서둘러 짐을 싸듯, 꽤나 더워졌다.

며칠전 케이블TV 업계 회의가 있어 회사를 나섰다.

회사를 나서자 마자 자동차는 발이 묶여 올림픽 대로에 진입하는데까지
50분이나 걸렸다.

평소 5분이면 족한 거리였다.

갈길은 멀고 마음은 급해오고,마음같아서는 차안을 쳐다 보았다.

정체의 이유는 간단했다.

프로야구 경기때문이었다.

회사가 야구경기장 바로 옆에 있다 보니 야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길도
막히고, 주변도 복잡해진다.

또 관객들의 응원소리가 사무실안까지 넘어 들어와 사원들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하기도 한다.

프로야구경기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경기가 업무를 방해하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야구 경기의 활기참이
사무실까지 전해져 사원들의 움직임을 가볍게 하고, 사고의 폭을 넓혀 주며,
일상업무에서 오는 짜증마저도 덜어 주는 것 같았다.

과연 그것은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프로야구만이 아니라 프로농구, 프로축구가 시작되면서 "팬서비스"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팬서비스"란 다시말해 팬의 입장에서, 팬을 위해, 팬에게 보다 큰 즐거움
을 준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고객감동의 최대치를 목표로 한다고 할까.

고객감동은 스포츠의 세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 곳곳에도 고객감동은 존재한다.

고객이란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을 지칭한다할 수 있다.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은 곧 자신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고, 사회전체를
밝고 건강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침에 만나는 동료 직원들에게 보내는 작은 미소 하나가
하루의 기분을 좋게 해 주고, 한통의 전화를 성심성의껏 받는 것이 회사의
대외 이미지를 고양시켜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듯하다.

얼마전 한 시청자의 전화가 사장실로 직접 걸려온 적이 있다.

방송중 자동차수리에 꼬필요한 정보를 보았는데, 미처 메모를 하기전에
화면이 지나가 버려 방송국에 전화를 했단다.

전화를 받은 한 직원이 의문사항에 친절히 응답해 주며, 자세한 사항을
알아서 다시 연락을 주겠노라 하여,반신반의하며 전화를 끊었는데, 다음날
그 직원이 전화를 주었고, 덕분에 자동차를 말끔히 수리할 수 있었다고
고마와 했다.

95년3월 케이블TV가 개국한 이래 방송국이 많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게 방송국의 담은 높고, PD 아나운서 카 메라맨 작가 등 그안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유분방하고, 개성이 뛰어난 사람들로 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방송국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콧대높은 사람들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런속에서 이런 시청자의 감사 전화를 받으니 그 어떤 상을 받은 것보다도
값진 느낌이 들었다.

예전같으면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전화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텐데, 이제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전화를 받는 풍토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고객감동의 실천 현장이었다.

우리가 어떤 기업을 방문했을 때 처음 방문하는 곳이라면 어디가 어딘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 관계로 그 회사 직원인 듯한 사람에게 "<><><>부서가
어디 있나요"라고 물어보게 된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쪽에 있는데요?"라고 대답한다.

물론 바쁜 업무중이니 일일이 안내해 줄 수 없는 경우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내가 안내데스크에 근무하는 사람도 아닌데 왜 나에게
묻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이지사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자신이 다른 회사를 방문했을 때 같은 경우를 당한다면 그 회사가 무척
불친절하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고객감동이란 큰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상대방에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해 주면
된다.

"<><><>부서가 어디있나요?"라는 질문에 시간이 있다면 직접 그 부서까지
안내해 주거나, 그렇지 못하다면 "<><><>부서는 오른쪽코너를 돌아가면
있는데, 혹시 못찾으면 <><><>로 다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라고 답해 주는
것은 어떨까.

이런 마음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모인 직장은 신바람나는 직장일 것이다.

일상생활소에서 나보다는 남의 입장에서, 자신을 조금 낮춘 마음으로
생활한다면 그 기업은 건강해 질 수 있지 않을까.

매일 만나고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들, 한솥밥을 먹는 사랑하는 가족들,
길에서 잠깐 스치듯 만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해
주는 마음을 가져보자.

오늘은 내일과 다르리라 생각하며 아침마다 새로운 꿈을 꾸었던 한 소년
처럼 오늘은 고객들에게 어떤 감동을 안겨줄 것인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아침이라면 오늘 하루가 좀더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