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그룹을 첫 사례로 "부도방지협약"이 시행되고 있으나 어느 누구도
책임있는 주체로 나서기를 기피하는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당국은 은행에, 은행들은 상호간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여기에 금융권별 대화채널도 없어 과연 이 기구가 정상대로 작동할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정도다.

진로그룹과 관련, 주거래은행인 상업은행은 "우리는 진로계열 주거래은행일
뿐 업체별 주거래는 따로 있다"(구자용 전무)며 채권금융기관간의 불협화음에
대한 거중조정 역할을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28일 대표자회의에 제2금융권이 참여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아도
"누구를 만나 무슨 의견을 내느냐"(김동환 상무)며 뒷짐을 진다.

상업 서울 제일 한일 외환 등 주거래 5개 은행들은 24일 전무회의를 갖고
종금사에 추가여신 부담을 주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이 사실이 종금사들에는
물론 다른 은행에 통보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은행연합회도 제역할을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연합회는 "특정기업의 처리에 이해당사자가 아닌데 왜 끼어드느냐"(노형권
상무)는 입장이다.

종금사들이 협약가입의 선결조건 4가지를 들고나왔지만 재경원 은감원 등
금융당국이 알아서 해주길 바랄뿐 팔짱만 끼고 있다.

협의회 간사인 조흥은행도 "비록 간사은행이긴 하지만 진로에 대한 누적
여신액 기준으로 75%이내에도 들지 않는다"(위성복 상무)며 한발을 뺀다.

조흥은행은 심지어 전무회의마저 참석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협약안을 만들었던 은행감독원도 "채권금융기관이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
해야 한다"며 팔짱을 낀다.

은감원은 정작 오는 29일 열리는 이수휴 원장의 국회청문회 출석에 온갖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게다가 종금사등 제2금융권은 "기업이야 부도나든 말든 잇속은 챙긴다"는
태도로 이번 협약을 대하고 있다.

단기신용대출이란 업무의 특성을 "전가의 보도"삼아 심지어 "판이 깨져도
상관않는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금융기관들이 관치금융의 구습에 젖어 차려놓은 밥상의
밥도 못떠먹는다"며 "은행들의 최근 모습을 보면 또 정부에서 나서서 해결
해줘야 할 모양"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이성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