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내가 당신에게 청혼을 해도 놀라지 않겠어?"

"그런 결정은 쉬운게 아니에요. 살아보고 정말 내가 더 없이 좋고
없으면 못살겠다고 할 정도로 사랑스러우면 그때 가서 청혼을 해도 돼요"

그녀는 자기가 아직도 호적상 부르스리의 아내로 되어 있음을
상기하면서 위자료를 안 받아도 되니까 빨리 호적을 정리해야겠다고
결정한다.

"귀여운 내 아기, 제인"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아기가 아니고 나는 당신의 애인이에요.
노인같은 말투를 쓰지 마세요. 당신은 충분히 젊어요. 충분히 멋있는
청년이에요. 내가 당신을 부르는 애칭을 만들어도 돼요?"

"무엇이라고 부르고 싶소?"

박동배는 그녀를 부드럽게 껴안은채 뺨에다가 입술을 거의 부비는 듯한
자세로 앉아서, "제인 보다는 제니로 부를까? "제니의 초상"이라는 영화에
나왔던 여자배우가 당신을 많이 닮았어. 슬픈 얼굴이 말이야"

"마음대로 해요. 제인이나 제니나 비슷한 발음이니까 낯설지는 않아요.
나는 당신을 보스라고 부를래. 어때요? 보슈라는 유명한 의사가 있어요.

내가 존경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보슈는 좀 어렵고" 어렵다기 보다는 미국 정신병원이 생각나서
싫었다.

그녀는 밝게 웃으면서, "보스가 좋지요? 보스라는 것은 우두머리라는
뜻이니까요. 당신은 나의 우두머리잖아요?"

그때 그의 가슴에서 핸드폰이 울린다.

새벽 다섯시인가 벌써? 그는 변명하듯, "교환실에서 나에게 주는 모닝
콜이야"

"아니 왜요? 이렇게 일찍 일어나세요?"

"그럼. 이렇게 일찍부터 호텔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핀다구. 호텔업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야 제인"

그는 그녀의 깡마른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실은 지금 호텔의 교환아가씨가 박동배 사장의 방으로 수청을 들러
와도 되겠는가 라는 신호였다.

그는 마누라가 죽고나서 심심풀이로 수청을 들린 교환수 미스최에게
식상해가고 있었다.

너무 쉽게 가져버린 여자는 아무래도 오래 사귀게 되지 않고 매력이
금세 식는다.

카사노바인 그는 약간 울적해지면서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하고 방을
나선다.

제인은 큰 거울 앞으로 가서 자기의 밍크코트 걸친 모습을 비춰보면서
드디어 자기에게도 찬스가 왔다고 생각한다.

흥분해서 방을 맴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