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잇따른 부도여파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금융기관들에
원활한 자금공급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러나 모든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꺼리고 움츠러든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걱정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진로그룹에 대해 8백4억원의 긴급자금을 지원하고
채권행사를 3개월간 유예시키기로 한 금융기관들의 결정은 바로 이러한
위기의식을 감안한 고육책으로 이해한다.

물론 진로의 경영권포기 수용여부가 불확실한 데다 이 정도의 지원으로
빠른 시일내에 정상화될지는 미지수다.

그렇지만 급한 불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되리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진로문제 뿐아니라 기업전반의 자금난과
연쇄부도 우려가 말끔히 가셔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진로에 대한 자금지원결정에도 불구하고 단기자금시장의 경색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28일 단기금융시장에서는 콜금리가 5개월여 만에 연14%대를
넘어섰고 기업어음(CP)할인율도 연 13.2%로 전날보다 0.05%포인트나
올라 급전구하기가 힘들어졌다고 한다.

단기자금시장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할 경우 연쇄적인 금융애로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흔히 단기금융은 기계의 윤활유나,집을 지을 때 벽돌사이의 빈틈을
메워주는 시멘트에 비유된다.

기계가 마찰없이 작동되고 건축물이 견고하게 완성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기능이다.

사실 요즈음 같이 어려운 경제현실을 감안하면 단기자금시장의 자금수급이
원활치 못한 것을 이례적이라거나 의외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부도방지협약"가입으로 타의에 의해 진로그룹에 대한 채권회수가 사실상
봉쇄된 종금사 등의 콜자금수요가 늘어 금리가 올라간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다만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한은의
통화환수 조치가 겹쳐 사태를 악화시킨게 아니냐는 점이다.

한은은 지난 28일 만기가 된 1조8천8백억원의 RP(환매채)중 9천1백10억원만
은행들에 풀어주고 9천6백90억원은 다시 묶었다.

물론 환수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가뜩이나 살얼음판 같은 단기금융시장에는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를 장래의 통화관리정책 방향을 제시해준 하나의 조짐으로 해석한
금융기관들의 반응은 민감할수 밖에 없다고 본다.

물론 중앙은행 나름대로의 통화관리목표나 판단이 있었을 줄 알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지금은 긴축을 논할 때가 아니라는게 우리의 생각이다.

본란이 누차 지적한대로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임을 재차 강조하지 않을수 없다.

더구나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통화당국의 정책의지는 중요하다.

시장안정을 위한 금융기관 자신들의 노력도 긴요하지만 통화당국의
보다 분명한 입장과 이를 확고하게 지켜나가는 일이 절실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