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현대건설이 태국에서 파타니~니라티왓 고속도로공사를 따낸 것을
시작으로 한국의 건설업체들은 96년까지 세계 76개국에서 1천2백억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주하며 한국경제발전을 주도해 왔다.

건설산업이 경기변동에 민감한데도 불구하고 한국건설업체들은 이같은
여건변화에 순응하면서 해외건설시장을 꾸준히 개척했다.

특히 70, 80년대에는 중동, 90년대에는 아시아지역등 시기마다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지역을 주무대로 삼아 고속성장을 이루어 왔다.

<> 50~60년대

한국의 건설업체들은 50년대 주한미군시설과 관련된 군납공사에서
해외진출에 필요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하였다.

또 62년부터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차관을 이용하여
사회간접자본시설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해외공사에 필요한
기초를 쌓을 수 있었다.

<> 70~80년대 초반

70년대 한국의 해외건설수출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하며 80년대 초반
절정에 달하게 된다.

특히 70년대 들어서는 중동시장의 급부상에 따라 중동을 주무대로 한국의
해외건설산업은 부흥기를 맞게된다.

특히 73년 4차 중동전의 발발로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 세계경제가 위기에
맞았을때 한국의 해외건설산업은 중동건설을 통해 외화를 획득함으로써
석유파동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줬을뿐 아니라 만성적
경상수지적자를 완화, 한국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가능케했다.

이 시기엔 해외시장의 범위도 넓어졌다.

알래스카 교량공사 수주를 통해 북미에 진출했고 73년에는 바하마
정유공사건설을 계기로 남미시장에,또 74년에는 나이지리아에 진출했다.

이처럼 활발한 해외시장 개척으로 67~71년 1차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
동안의 건설수출실적은 상품수출 성장률을 상회하는 연평균 58.6%를
나타냈다.

72~76년까지는 연평균 1백25.7%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상품수출성장률
49.6%보다 성장률이 2.5배나 높았다.

건설수출액도 66년에 1천1백만달러에 불과하던 것이 71년에는
5천5백70만달러, 73년 2억달러, 76년에는 26억달러를 기록하며 단일업종
으로는 가장 많은 수출실적을 기록했다.

이같은 건설수출의 신장세는 4차5개년계획연도에도 지속돼 78년에는
81억4천5백만달러의 수출실적을 기록하였다.

이는 전년대비 1백31.6% 성장을 나타낸 것으로 상품수출성장률 26.5%보다
5배나 높은 것이었다.

한편 전체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6년 4.4%에서 72년 5.0%,76년
32%로 늘어나다가 78년에는 64.1%를 기록하며 건설수출이 전체수출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게된다.

81년에는 총수주액 1백36억달러를 기록하며 미국에 이어 세계2위의
건설수출국으로 발돋움하게 되는데 이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한국인의
개척정신, 인내와 근면성에 기초한 성과였으며 중동특수도 중요한 뒷받침이
됐다.

<> 80년대 중후반

70년대 중동신화를 안겨주었던 중동건설시장은 80년대초 지역분쟁과
유가하락등으로 공사발주량이 급격히 감소, 한국의 해외건설산업도 하강기로
접어든다.

82년에 2.2%감소하는데 그쳤던 건설수출은 86년에는 52.3%나 하락하기도
했다.

81~83년까지 계속해서 1백억달러를 넘어섰던 건설수주액도 지속적으로
감소, 88년에는 16억2백만달러를 기록하며 최저점에 이르게 된다.

건설업이 전체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82~86년에 연평균 28.4%씩
매년 감소하게 된다.

82년부터 88년까지 약7~8년간 지속됐던 해외건설산업의 하락세는
중동공사발주량의 격감과 경쟁국간의 치열한 수주경쟁에서 비롯됐다.

고급기술이 요구되는 발주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였다.

<> 89년~현재

이 시기에 한국의 해외건설산업은 시장 다변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잇따른
대형공사의 수주 그리고 금융능력의 제고를 통해 제2의 부흥기를 준비하게
된다.

89년부터 해외건설수주액이 증가추세로 반전하게 되고 90년에는
단일공사로는 최대공사인 리비아 대수로 2단계 공사를 수주, 해외건설경기가
회복되는 전기를 맞게된다.

90년 해외건설수주액이 89년보다 1백%이상 늘어난 67억7천만달러를
기록하였고 94년 74억달러, 95년 86억달러로 증가하다가 96년에는 83년이후
최초로 해외건설수주액이 다시 1백억달러를 돌파했다.

올해는 수주액 1백50달러 돌파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해외건설산업의 부흥은 아시아시장의 급격한 팽창과 해외건설업체들
의 자금동원능력의 향상, 단순시공 위주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개발형사업으로
수주패턴을 바꾼데 따른 것으로 볼수 있다.

92년까지 전무했던 개발사업은 96년 35억8천2백만달러의 실적을 기록했다.

통상 단순수주공사의 순이익은 총수주액의 5%에 그치는데 비해 개발사업은
20%이상 되기때문에 개발사업의 약진여부는 향후 해외건설업계의 판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2의 부흥기를 맞고 있는 한국의 해외건설산업은 아직도 아시아시장
의존도가 70%를 넘어서고 기술엔지니어링, 프로젝트관리, 금융조달등도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이 낮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업체가 금융조달을 하는데 따르는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풀고 해외정보네트워크를 구축, 변화된 국제환경에
대비해야 한다.

업계는 21세기 건설업의 경쟁력이 설계, 엔지니어링, 컨설팅, 감리 등에
의해 판가름난다는 점을 감안, 부가가치가 높은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것으로 보인다.

< 김용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