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문제를 놓고 여권 내부에 난기류가 흐르고 있다.

여권핵심부와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대선자금 "해법"에 대해 현격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표는 2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고위당직자회의에서 "대선자금은 국민의
의혹을 풀수 있도록 규명되고 처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전날 언급에 대해
"정치권 전체를 두고한 발언"이라며 "이에 대해 대표자격이니, 경선주자
자격이니 하고 구태여 구별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이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당대표가 아닌 대권주자의 한사람으로서 정치적
발언을 할수 있는게 아니냐"는 청와대측 입장을 반박한 것이다.

그는 또 "문제가 복잡할수록 상식적인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해
대선자금문제를 정도로 풀어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대표의 한 측근은 "대선자금문제가 표면화된 이상 어떤 식으로든 국민을
이해시키기 위한 조치와 절차가 필요하다는게 이대표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선자금의 구체적인 내역을 공개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국민을 이해시키고 12월대선때 대선자금문제로 다시 "발목" 잡히지 않으려면
"고백" 차원의 입장표명은 필요하다는게 이 측근의 지적이다.

이대표의 이같은 입장은 소장의원들을 포함해 당내에서 적잖은 지지를 받고
있다.

초.재선의원들이 지난달 이대표와의 간담회에서 "과거의 잘못된 정치에서
파생된 정경유착 등 모든 것에 대해 고백할 것은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국민신뢰를 회복할수 있다"며 "특단의 대책"을 건의한 것도 이대표에겐 힘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대선자금 공개불가및 입장표명 유보"라는 방침을
견지하고 있다.

설혹 대선자금 공개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증빙자료가 없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특히 이대표의 대선자금관련 발언에 표면적으로는 "청와대와
이대표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도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탐탁치
않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나라경제가 어려운 시점에 실체규명도 어려운 대선
자금문제와 같은 지난 일을 가지고 정치공방만 일삼아 역사를 퇴보시킬 수는
없다"며 "대선자금공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당론에 변함이 없다"고 말한
점은 여권핵심부의 분위기를 대변해주고 있다.

박관용 신한국당 사무총장도 이날 "이대표의 대선자금 발언은 당대표의
자격이라기 보다는 대선주자로서의 개인적 견해를 피력한 것"이라고 잘라말해
이대표 발언이 당론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와관련, 여권핵심부 관계자들은 최근 과거의 잘못된 정치관행을 반성하고
새 출발을 다짐하기 위해서는 대선자금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입장표명이 필요
하다고 의견을 모았으나 김대통령의 결심을 받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자금 공개를 요구하는 야권의 의도가 연말 대선을 겨냥한 정치공세인
만큼 포괄적인 입장표명을 하더라도 야권의 공세가 결코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포괄적 입장표명" 계획을 일단 유보시켰다는 것이다.

청와대측도 법률적 측면을 검토한 결과 "현직대통령은 재임중 공소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에 퇴임이후부터 공소시효가 시작된다"는 견해가 우세해 대선
자금에 대한 포괄적인 입장표명도 김대통령에게 부담이 될수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따라서 현재로선 대선자금문제 해법은 김대통령의 결심에 맡길수 밖에
없다는게 여권관계자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대선자금문제 해법에 대한 여권핵심부와 이대표측간 이견은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해소될 공산이 크다.

김대통령은 한보사태및 차남 김현철씨 파문과 대선자금문제 등을 정리한뒤
임기말 국정운영방향에 대한 입장표명을 검토하고 있고 이대표는 대선후보
경선을 준비하고 있어 김대통령과의 관계악화를 결코 원치 않고 있기 때문
이다.

김대통령은 현철씨가 사법처리되는 이달중순께 대국민담화 또는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현시국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은 김대통령이 이때 대선자금문제에 대해 언급할지, 한다면 어떤 내용을
담을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김삼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