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8년만에 영국의 정권을 거머쥔 노동당은 압승의 기쁨을 누릴 여유도
없이 바로 "환율과의 전쟁"을 벌어야할 처지다.

토니 블레어 총리와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 이끌어갈 노동당 내각은
단기적으로 "금리를 올릴 것이냐,말 것이냐"의 기로에 직면했다.

새 내각 경제팀은 당장 오는7일로 예정돼 있는 월례 통화정책회의에서
재할인금리 인상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영국의 재할인금리는 작년 10월이후 현재까지 7개월동안 연 6.0%로 고정돼
있다.

에디 조지 중앙은행총재는 경기가 과열기미를 보이고 있다며 재할인금리를
인상해야 된다고 벌써부터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런데도 당시의 집권당인 보수당은 총선 표를 의식해 중앙은행총재의
금리인상 요청을 묵살함으로써 6.0%의 금리가 그대로 이어져왔다.

경기과열과 인플레 우려같은 경제상황을 고려할때 새 정부는 재할인율을
0.25%포인트 인상해야 된다는 중앙은행총재의 요청에 따라야할 형편이다.

노동당 정부는 당초 선거공약에서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물가를
인플레율 2.5% 이하로 유지할 것이라고 장담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환율이다.

영국통화인 파운드의 가치는 최근들어 강세를 지속해 왔다.

영국경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면서 파운드화 가치가 오르기 시작한 것.

총선일인 지난1일 뉴욕 런던등 국제외환시장에서 파운드는 파운드당
1.62달러의 환율로 거래됐다.

작년 6월말께만해도 이 환율은 1.55달러에 불과했다.

미국 달러화와 비교한 파운드화의 가치가 10개월 남짓만에 4.5%정도 오른
셈이다.

미 달러화가 일본 엔화나 독일 마르크화에 대해 초강세를 보이는 "달러 고"
시절에 영국 파운드화 가치만 달러에 대해 오름세를 보여 영국의 기업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당연히 수출비중이 큰 영국의 대기업들은 요즘들어 "파운드 고"를 걱정
하기 시작했다.

최근의 환율추세가 이어진다면 영국 기업들의 올해 수출채산성이 악화될
것이라고 죽는 소리를 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영국의 활발한 경기를 감안할때 노동당이 인플레율
2.5% 이하의 저물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재할인금리를 여러번 인상해야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런 환율문제를 피해가는 대안으로 정부지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세금을
가능한 많이 거두어 들이는 재정정책상의 처방이 거론되고 있으나 이 역시
실행에 어려움이 많다.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장기집권을 준비해야될 노동당 정부가
집권초기부터 증세를 내밀어 국민들의 반발을 자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토니 블레어 내각은 앞으로 "환율"과 씨름하는 진통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오는 99년으로 예정된 유럽연합(EU)의 통화통합문제도 블레어 경제팀의
뜨거운 감자가 될 공산이 크다.

노동당은 보수당과 달리 적극적인 EU 동참을 표명해 왔으나 통화통합에
대해선 어정쩡한 입장을 취해 왔다.

영국인들의 정서가 통화통합으로 파운드화가 사라지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사실을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다.

블레어총리가 아시아시장 공략등의 통상정책을 여러번 강조해온 것도
역설적으로 유럽문제에 대해선 분명한 자세를 취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은
점이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블레어총리는 당초 선거유세중에 최저임금제 부활등을 제외하면 민영화와
노조견제 등으로 요약되는 보수당의 대처리즘은 대체적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선언해 몰표를 얻을 수 있었다.

"새로운 노동당"을 내세우며 인기 절정에 오른 블레어 총리가 어떻게
환율과 금리및 조세문제를 잘 요리하는냐에 따라 영국경제의 희비가 교차될
전망이다.

<양홍모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