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신은 겨우 그의 거포에 닿아 있던 손을 뺀다.

지코치가 너무 강하게 손을 쥐고 있어서 아주 가까스로 손을 뺀다.

"이봐요. 아무 느낌도 없어요? 모두 까무러치는데 냉혈질이야, 아니면
불감증인가?"

김영신은 그의 너무나 솔직 대담함에 찡그림 대신 파안대소한다.

그는 이렇게 성적으로 본능에 철저한 남자를 만난 적이 없다.

김영신은 남자들과의 사랑에 있어서 자기의 방법을 옳다고 생각하며,
소신껏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고 했었다.

그러나 사랑은 오래 가는 것이 아니다.

가변적이고 변덕스럽다.

오래전에 재혼을 한 지금의 남편과도 결혼하자 이내 급격히 냉각되었다.

지금 그녀는 이혼같이 복잡하고 힘드는 일은 다시 안 하리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결심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사무실의 미스 리가 자기의 연하 남편 윤효상의 아이를 배고 있다고
고백하자 그녀는 못 볼 것을 본 본처의 충격으로 여행을 떠났다.

더구나 자기의 어깨에 새처럼 앉아서 날아가기를 거절하고 있는 귀여운
독수리를 어깨에 얹은 채로 남미여행의 여정에 올랐다.

그녀는 옛날에 가본 남미를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떠났고 두번째로
겪어야 하는 이혼의 고통을 정리하려는 의도로 떠났다.

윤효상은 거짓말에 능해서 미스 리의 고백을 들은 후에도 결코 자기는
미스 리와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는 얌체스럽고 몰염치한
남자였다.

그녀는 그의 사악함에 질려서 돌아가면 곧 이혼소송을 의뢰할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결혼의 신성이나 순결을 깨뜨렸대서가 아니라 남편의 얄팍한 속임수와
이기적인 인간됨됨이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환멸스러워진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어요?"

아르헨티나로 넘어가는 비행기속에서 지코치가 손을 잡으며 물었다.

"이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렇게도 이기적이고 정 떨어지는 사람인가요?"

그녀는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사무실의 여직원이 임신을 했다든가 하는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는 아직 안 하고 있다.

"생각할 일이 많아서 여행을 하려는데, 남미구경하고 싶으면 같이 가도
돼요.

나는 숨어서 연애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해요.

다시 결합하기 힘들만큼 싫으면 그냥 이혼을 하는 것이 더 인간답고
도덕적이라고 믿는 사람이에요"

"그건 어폐가 있는데요. 왜 제가 김영신 사장님의 애인이라고 소개하지
않아요? 솔직하게"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