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연공정"은 두꺼운 재료를 압연기에 넣어 얇게 펴내는 작업이다.

말로는 쉽지만 적절한 누름강도와 가열온도 설정등 각론에 들어가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압연은 다양한 재료를 상대하기 때문에 정해진 기준은 없다.

그야말로 오랜 경험에서 축적된 산지식과 동물적인 감각이 작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래서인지 풍산 부평공장 박연선(박연선.54)반장에게서는 끈질기게
한분야에서 버텨온 사람에게서 묻어나오는 커다란 힘을 느끼게 된다.

박반장의 파워는 반도체 리드프레임용 신소재를 개발한데서 증명된다.

지금도 재료배합이 비밀인 PMC102를 소재로 77년 리드프레임을 개발할
당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공정을 개선하고 산처리농도 가열온도설정등
완벽한 조건을 맞추는데 밤낮없는 젊음을 바쳤다.

개발착수에서 제품생산까지의 7년동안 무지막지한 고생을 했지만
첨단부품 소재를 국산화하는 성과에 이어 독일에 기술을 수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지금도 이제품은 국제특허를 갖고 풍산에 크게 기여하는 효자제품이
됐다.

박반장은 이밖에도 보일러용 탈산동 소재개발, 자동차 라디에이터핀제조를
위한 박판기술, 컴퓨터용 플로피디스켓 표면처리공법개발등 압연작업의
지평을 넓히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일을 천직으로 알고 일생을 바쳐온게 오늘에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한솥밥을 먹으며 후배들과 생활해온 만큼 자연스런 기술전수도 이뤄져
내년 정년퇴직을 후회없이 맞을 수 있게 됐습니다"

박반장은 평생 공장을 지켜온 기술명장으로서 특별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기술자는 현장에서 배우고 후배를 키우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나름대로의
생각때문이다.

압연기와 함께 땀을 흘리며 후회없는 삶을 살아왔다는 박반장의
등뒤에서 길고 큰 그림자가 엿보인다.

< 인천=김희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