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산업의 이경진 사장(55)은 지난 3일 아침 6시에 출근했다.

다른 날보다 30분 일찍 왔다.

나오자마자 그는 화장실로 가서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직접 화장실청소를 하다니.

그러나 이 회사는 누구든 당번이 되면 일찍 나와 청소를 해야 한다.

사장이든 임원이든 예외가 없다.

경기 시흥시 신천동 88에 있는 우경의 공장에 가보면 허름한 겉모습에
약간 실망한다.

그러나 공장문을 열어보는 순간 깨끗한 환경과 정돈된 공정관리에 놀라게
된다.

이 회사야말로 겉모습은 허름하지만 속이 깨끗한 기업이다.

겉보다는 내용이 알찬 회사다.

우선 매출구성부터 보자.

매출의 40%가 수출이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으로만 수출한다.

주요품목은 제트히터와 팬.

일본의 오리온기계, 미국의 하이테크사 등 세계적인 공조기기회사들이
이 제품을 사간다.

선진국 첨단기술기업에 이처럼 납품을 할 수 있는 건 이 회사의 기술력이
그만큼 높아서다.

그러나 우경도 처음부터 우수한 기술을 가졌던 건 아니다.

그야말로 맨바닥에서 출발해 피땀으로 기술을 쌓았다.

지난 90년 1월말.

이경진사장은 공장바닥에 앉아 허탈해했다.

연구원들이 2년간 걸쳐 만든 열교환기용 노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린나이코리아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스보일러용 열교환기를 만들어주기로
약속했으나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 연구용품 값만해도 3억원어치가 들어갔는데도 제품을 넣으니
새카맣게 타서 나왔다.

"2년간 밤잠 한번 제대로 못잤는데..."

박관용 공장장은 끝내 땅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사장은 공장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달랬다.

돈을 마음대로 써도 좋으니 이것만은 성공시키자고 다짐했다.

이로부터 6개월뒤 우경의 연구원 다섯사람은 끝내 열교환기용 노를 개발해
내고야 말았다.

요즘도 이 공장 2층입구엔 열교환기용 노가 자랑스럽게 놓여있다.

2년반동안 5명의 연구원을 밤잠 설치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이 노가 일본
기술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사장이 이렇게 무모하리만큼 기술투자로 승부를 거는데는 그의 경력이
뒷받침한다.

인하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금성사(LG전자)에서 6년간 근무하고
경원세기에서 공장장을 맡는 등 기계분야에서만 일해왔다.

특히 그는 부도가 나기 직전인 고향선배의 회사 대현을 맡으면서 경영
실력을 다졌다.

이 회사에서 금형자동교환시스템을 개발, 3년만에 회사를 완전 흑자로
돌려놓았다.

대현이 흑자로 돌아서자 이사장은 남몰래 결단을 내린다.

이제 완전히 혼자서 창업하기로 마음먹었다.

86년 우경산업을 설립한 이후 그는 아직까지 5시간 이상을 자본 일이
한번도 없다고 술회한다.

회사에서 제일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한다.

그럼에도 사원들에게 일을 강압적으로 시키는 일은 없다.

덕분에 사원들도 스스로 일찍 나와 아침청소로 시작한다.

세계적인 첨단기업들이 우경을 신뢰하는 까닭은 바로 이런 자발적 기술이
뒷받침됐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 이치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