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전경기는 한마디로 "흐림"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됐던 내수부진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데다
수출경기마저 엔저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가전사들은 이미 지난해 내수판매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쓴잔을
삼킨 경험이 있다.

올해 들어서도 이를 회복할만한 대형 호재가 없다.

1.4분기 내수판매를 보면 컬러TV가 전년동기 대비 10.0%(대수 기준)
감소했다.

이밖에 VTR이 10.4%, 냉장고 7.8%, 세탁기 15.2%가 각각 줄어드는 등
전통가전의 수요 부진이 심각한 상황이다.

반면 국내에 유입되는 외국산 가전제품은 꾸준히 늘고 있다.

1.4분기까지의 수입동향을 보면 컬러TV는 멕시코산 소니TV 등의
유입증가로 전년 동기 대비 117.6% 늘어났으며 VTR은 64.7%, 라디오는
62.1% 각각 증가했다.

더우기 일본기업들이 동남아에서 생산한 저가형 가전제품들도 최근
급속하게 늘어나는 추세여서 이들과도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분야로는 지난해부터 서서히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는 디지털 가전기기(정보가전)를 꼽을 수 있다.

이는 디지털 위성방송과 케이블TV 인터넷의 확산에 따른 기대감으로
풀이된다.

특히 전통적인 AV기기에 인터넷 위성통신 등 멀티미디어 기능을 통합한
제품들은 올해 가전시장의 "이슈상품"으로 등장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 정보가전제품들이 가전 시장 전체의 물줄기를 반전시킬만한
역량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초기 시장진입 단계이니만큼 시장을 형성하고 소비자들에게 이미지
메이킹 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수출의 경우도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하다.

93년 이후 급격한 엔고때 구조조정을 완료한 일본 기업들이 지난해
엔저의 물결을 타고 미국 등 주요시장을 되찾고 있다는 게 외부적인
취약요인이다.

일본 전자업체들은 올해에도 컬러TV 고기능VTR 하이파이 오디오 등
주력제품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어 국내 전자업체들의 수출둔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내부적인 취약요인으로는 가전 3사의 해외복합생산단지가 본격
가동되면서 현지에서 생산돼 수출되는 물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는 결국 상대적으로 국내 수출분을 상쇄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을 비롯한 중남미 독립국가연합 등 이른바 이머징 마켓에
대한 지역차별화 전략이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또 그간 과다한 물류비용으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던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가전제품의 수출이 큰 폭으로 늘고 있는 것은 눈여겨 볼 만하다.

결론적으로 내수부문에선 현재의 침체상태가 상반기중 내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에는 에어컨 등 일부제품에서 다소 긍정적인 요인이 있지만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획기적으로 호전되지 않는 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전자산업진흥회 이진기 가전과장)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수출의 경우도 몇가지 악재가 도사리고 있다.

특히 전략시장인 독립국가연합 중남미 등이 수입품에 대한 규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데다 미국 등 선진국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가전업계가 불황의 터널에서 허우적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긍정적인 요인이 없지는 않다.

지금과 같은 불황기를 통해 보다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게 그것이다.

경쟁력 없는 품목에서 철수하거나 저가제품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은
불황이 가져다준 메리트임에 틀림없다.

국내 가전사들이 엔고 시절 일본 전자업계가 단행했던 경비절감과
구조조정노력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의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