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묏자리를 찾아 확보하려 애쓰는 것은 비단 동양인만의 풍습은 아닌
듯하다.

미국 감독과 프랑스.이탈리아 배우가 이탈리아 소도시를 배경으로
만들어낸 영화 "로잔나 그레이브" (감독 폴 웨일랜드)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따스하고도 유머러스한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멜러드라마의 첫번째 요건이 "탄탄한 출연진"이라는 원칙에 맞춘 듯
배우들은 매우 친숙한 인물들이다.

"레옹"의 냉혹한 킬러 장 르노가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아내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남편, "피셔 킹"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메르세데스
루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쾌활함을 잃지 않는 아내로 나온다.

폴 웨일랜드는 우리나라에 개봉된 코미디 "굿바이 뉴욕, 황금을 찾아라"를
연출한 감독.

줄거리는 매우 동화적이다.

1년안에 죽게 될 아내의 마지막 소망은 10년전 6살때 죽은 딸 옆에
묻히는 것.

그러나 성당묘지에는 자리가 3곳밖에 남지 않았고 예약을 할 수도 없다.

르노는 환자를 위문하고 수혈하는가 하면 네거리에서 교통정리도 해가며
사람들의 죽음을 늦추려 애쓴다.

그러나 자리는 한두곳씩 줄고 결국 그는 아내에게 죽은척 하도록 하는
극약처방을 내린다.

영화는 얼굴에 검은 베일을 쓴 메르세데스 루엘과 장 르노가 유쾌하게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미국 자본으로 만들어졌으나 이 작품은 이탈리아 영화로 평가된다.

배경이 이탈리아인데다 단순 소박한 사고방식과 극단적 상황에서도
웃음지을 줄 아는 여유는 이탈리아인의 속성으로 여겨지기 때문.

코미디지만 할리우드식으로 정신없이 웃기는 영화를 기대해서는
실망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라는 노장사상의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여유를
갖고 감상해야 참맛을 느낄수 있다.

금강기획 수입.배급.

24일 개봉 예정.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