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시어머니 45년간 수발 .. 국민훈장 동백장 민정효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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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잘 모시지도 못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큰 상을 받게 돼 떨리고
부끄러운 마음뿐입니다"
이번 어버이의 날에 전국에서 으뜸가는 효부로 선정,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민정효(67세.광주시 북구 문흥동 현대아파트 103동 1403호) 여사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어머니 정막동(102세) 할머니를 감싸안고 감격해 했다.
민씨가 이같은 영예를 안게 된 것은 지난 51년, 22살의 젊은 나이에 시집을
온후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늙은 시어머니 병구완
을 지극 정성으로 해온 것이 주위에 알려진데서 비롯.
민씨가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근처 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마친후
시어머니의 방에 들러 이부자리와 대소변을 살피는 일은 글자 그대로
일상생활이었다.
아침식사전에 목욕을 시키고 속옷을 갈아입히는 일도 빠짐없이 해온 하루
일과.
"친구들이 아파트 노인정에서 민씨를 부르지만 시어머니 걱정에 한번도
마음 편하게 나온 적이 없었다"고 이웃주민인 김덕지(69세)씨는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은 아파트에 그런대로 살림집을 마련하고 손자들까지 4대가 한가족을
이루며 살게됐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어려운 살림살이의 연속이었다.
6년전 작고한 민씨의 남편은 민선면장과 군수리조합장을 지낼만큼 한때
잘나가기도 했지만 탄광과 금광에 손을 댔다 실패, 가세가 기울면서 민씨의
고생은 이어졌다.
전남 화순군 사평에서 농사와 길쌈으로 입에 풀칠을 하고 틈틈히 무명베로
교복을 만드는 바느질로 살림을 꾸려온 민씨는 지난 80년 도시가 시골보다는
살아갈 방도가 많을 것이라고 판단, 광주로 이사했다.
그러나 막상 이사는 왔지만 시골에서만 한평생을 살아온 민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식당에서 찬모로 일하거나 공장에서 날품을 파는 길밖에
없었다.
민씨는 "어머니께서 5년전 노환으로 시력을 잃은데다 최근들어서는 귀마저
어두어져 큰 걱정"이라며 "연세는 많지만 아직까지 정신이 똑바르고 말씀도
또렷한 것이 안심"이라며 기뻐하기도 했다.
지난 86년에 민씨의 며느리로 들어온 송종심씨(39)는 "어머니가
시할머니를 변함없이 모시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면 아들과 딸에게도 효의
산 교육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근검절약해 지금 살고 있는 이집을 마련했다"고 자랑한
민씨는 "늙은 부모를 모시는 일을 꺼려하는 요즘 세상에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를 아무런 불평없이 모시고 있는 아들내외에게 감사한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 광주=최수용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9일자).
부끄러운 마음뿐입니다"
이번 어버이의 날에 전국에서 으뜸가는 효부로 선정,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민정효(67세.광주시 북구 문흥동 현대아파트 103동 1403호) 여사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어머니 정막동(102세) 할머니를 감싸안고 감격해 했다.
민씨가 이같은 영예를 안게 된 것은 지난 51년, 22살의 젊은 나이에 시집을
온후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늙은 시어머니 병구완
을 지극 정성으로 해온 것이 주위에 알려진데서 비롯.
민씨가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근처 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마친후
시어머니의 방에 들러 이부자리와 대소변을 살피는 일은 글자 그대로
일상생활이었다.
아침식사전에 목욕을 시키고 속옷을 갈아입히는 일도 빠짐없이 해온 하루
일과.
"친구들이 아파트 노인정에서 민씨를 부르지만 시어머니 걱정에 한번도
마음 편하게 나온 적이 없었다"고 이웃주민인 김덕지(69세)씨는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은 아파트에 그런대로 살림집을 마련하고 손자들까지 4대가 한가족을
이루며 살게됐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어려운 살림살이의 연속이었다.
6년전 작고한 민씨의 남편은 민선면장과 군수리조합장을 지낼만큼 한때
잘나가기도 했지만 탄광과 금광에 손을 댔다 실패, 가세가 기울면서 민씨의
고생은 이어졌다.
전남 화순군 사평에서 농사와 길쌈으로 입에 풀칠을 하고 틈틈히 무명베로
교복을 만드는 바느질로 살림을 꾸려온 민씨는 지난 80년 도시가 시골보다는
살아갈 방도가 많을 것이라고 판단, 광주로 이사했다.
그러나 막상 이사는 왔지만 시골에서만 한평생을 살아온 민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식당에서 찬모로 일하거나 공장에서 날품을 파는 길밖에
없었다.
민씨는 "어머니께서 5년전 노환으로 시력을 잃은데다 최근들어서는 귀마저
어두어져 큰 걱정"이라며 "연세는 많지만 아직까지 정신이 똑바르고 말씀도
또렷한 것이 안심"이라며 기뻐하기도 했다.
지난 86년에 민씨의 며느리로 들어온 송종심씨(39)는 "어머니가
시할머니를 변함없이 모시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면 아들과 딸에게도 효의
산 교육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근검절약해 지금 살고 있는 이집을 마련했다"고 자랑한
민씨는 "늙은 부모를 모시는 일을 꺼려하는 요즘 세상에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를 아무런 불평없이 모시고 있는 아들내외에게 감사한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 광주=최수용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