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TV 수목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 (오후 9시55분)는 시작전부터
유난히 리얼리티를 강조했다.

"한지붕 세가족"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등 서민생활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드라마를 연출해온 박종PD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겠다고 자신했고 작가 노희경은 실제로 마포에 살면서
철거현장을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드라마의 공간은 개발의 열기가 달아오르던 70년대 서울 마포의 달동네.

제작진이 최대한 살리려는 시대극의 리얼리티가 충분히 살아났다.

화면은 20년전의 이야기임을 알려주는 그림들로 가득했다.

휙 지나가는 세발달린 자동차, 빈민들에게 배급하는 밀가루를 타기위해
동사무소에 길게 늘어선 줄, "우주소년 아톰"의 방영시간에 맞춰 동전을
쥐고 만화방에 모여드는 아이들 등.

중년층은 "그래, 그때는 그랬지"라며 향수에 젖고 젊은 층은 낯선
풍경에 신기해하며 바라보기에 충분한 삽화들이다.

"옥의 티"를 보이지 않기 위해 소품과 의상 하나하나에 공들인 노력이
역력했다.

세트촬영이 아니라 70년대 분위기가 남아있는 지역을 찾아다니며 찍기
때문에 카메라의 각도를 좁히고 롱 쇼트 (Long Shot)를 자제하는 등 요즘의
모습을 비치지 않으려는 시도는 긴박감을 주고 스피디한 내용전개와 잘
맞물렸다.

극은 달동네 밑바닥 인생들의 먹고 살기 위한 생존 차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동네 건달과 조직폭력배 노름꾼 술집작부 일수업자 만화방주인 등 으레
등장하는 인물들이 제각각인 "사는 이유"를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졌다.

서민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대사, 고두심 윤여정 김영옥 장용 김동주 등
베테랑 연기자들의 농익은 연기는 리얼리티의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

의욕과잉의 흔적도 없지 않다.

나문희가 연기하는 "미친 여자"는 흥미를 위해 작위적으로 들어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애숙( 이영애)이 손님앞에서 술을 가져오라며 "사는 이유"를 늘어놓는
장면은 사족이다.

공중파의 한계를 넘나드는 리얼하지만 선정적으로 비칠 수 있는 대사와
동작이 간간히 튀어나온다.

앞으로 등장인물간의 본격적인 갈등이 펼쳐질 이 드라마가 초반에 보인
리얼리티의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판에 박힌 "통속성"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