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통신사업] 시내전화 : 한통 독점 '끝'..경쟁시대 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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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전화역사가 시작된지 1세기만에 시내전화부문에서 경쟁의
시대가 열린다.
한국통신이 독점해온 이 분야에 오는 6월이면 제2사업자인 "하나로통신"이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 99년초부터 본격 사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시내전화 경쟁시대 돌입은 여러가지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97년 5월현재 2천만명을 넘어선 전화가입자들은 서비스회사를
자유롭게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낮은 요금을 받는 사업자를 마음대로 골라
가입할 수있게 되는 것이다.
경쟁체제가 갖는 가장 큰 이점으로 평가되는 대목이다.
또 시내전화서비스의 수준이 기존 음성위주에서 PC통신 인터넷접속등
데이터통신은 물론 동영상을 포함하는 멀티미디어시대로 빠르게 이행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적으로도 제2의 기간망을 갖게돼 유사시 어느 한쪽의 망이 문제가
생기더라도 다른 쪽으로 우회할 수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도 한가지
의의이다.
WTO(세계무역기구)기본통신시장 개방협상결과에 따라 해외사업자들의
국내시장 진입이전에 경쟁구도를 갖추게 됨으로써 국내의 시내전화시장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한 수단이 될 것으로도 전망된다.
우리나라 전화역사의 시작으로는 1885년 9월28일 한성 전보총국이
개설된 때가 꼽힌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전화사업이 시작된 시기는 1902년 3월20일 한성(서울)과
인천간 전화를 개통, 서울 2명과 인천3명등 5명의 가입자가 확보된 것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전화사업은 이후 일제의 강점으로 자생적 발전의 여건이 되지 못한채
침체기에 접어들어 43년엔 불과 4만4천명에 머물렀다.
광복이후 80년대 이전까지도 전화사업은 여타 기간산업의 중요성에
밀려 극히 미미한 수준인 1백73만 가입자로 우리나라 전가구의 3분의
2가 혜택을 받지 못했다.
한국의 전화사업이 비약적인 도약을 맞은 때는 지난 82년1월1일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발족되면서 부터이다.
한국통신은 설립당시 3백50만회선과 3백26만 가입자를 갖고 있었다.
이후 연평균 1조원에 가까운 시설투자등을 통해 매년 1백40만회선이
넘는 전화시설을 지속적으로 공급,88년10월 "1가구 1전화시대"로 평가되는
1천만가입자를 확보했다.
특히 지난 86년에는 국내 처음, 세계 10번째로 전전자교환기(TDX)를
개발, 가평 전곡 고령 무주전화국에서 개통함으로써 전화대량 보급의
길을 열고 87년에는 전국자동전화시대, 1일전화 가설 즉시체제구축등의
기록을 세웠다.
한국통신은 특히 지난 7일 "1가구 2전화"시대를 의미하는 2천만명의
가입자를 확보, 1백인당 43.4회선으로 세계 9위의 통신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러한 역사속에서 전화요금은 지난45년 연60원의 기본료에 1회사용시
10전이 부과되던 것이 60년대에는 기본료 3백원에 한통화당 4원으로
변화했다.
이후 시설확충등을 위해 기본요금과 도수료가 여러차례 인상되다
77년 기본료 1천7백40원에 기본도수(1백도수)까지는 면제하고 1백도수
초과분부터 8원을 적용하다 도수공제제도는 80년에 폐지됐다.
시내통화료는 86년 종전 20원에서 25원으로 인상됐고 93년2월 30원,
94년8월 40원, 96년12월 41.6원등으로 조정돼 왔다.
정부투자기관인 한국통신은 이같은 국내 전화사업에서 이룩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독점체제에 안주, 비효율성을 드러내면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6만여명에 이르는 인력등 비대화된 모습으로 "뒤뚱대는 공룡"이라는
불명예스런 평가를 듣고 있다.
국내경쟁자가 생기면 과연 이와 효과적으로 대적하고 해외거대
통신회사들과 싸움에서 국내시장을 방어해낼 주체가 될 수있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을 받아왔다.
한국통신은 그러나 최근 경쟁시대를 대비한 이른바 "변화와 개혁"
프로그램을 잇따라 내놓고 대응책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과거 연공서열에 따라 때가 되면 자동으로 승진할 수있었던 인사제도를
개편, 관리급에 대해서는 임기제를 도입해 능력없으면 도태되도록 했다.
또 40대의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고 최근에는 사장과 본부장 자회사사장등
부문장이 연간 목표에 대한 계약을 맺고 달성여부에 따라 인사조치를
실시하는 "경영계약제"를 도입, 책임경영체제를 완비하기도 했다.
한국통신은 통신사업에서 경쟁의 승패는 결국 누가 더 우수한 통신망을
먼저 얼마나 갖느냐에 있다고 판단, 네트워크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위해 대형건물 신도시 공단에 기반통신시설을 조기에 공급하고
가입자 통신망의 부족분을 완전히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또 ISDN(종합정보통신망)기능이 있는 전전자교환기(TDX-10A)를 개발,
올해부터 전면 공급에 나서 2002년까지는 시내전화국에 완비한다는 방침이다.
이와함께 시내통신망의 고도화를 위해 멀티미디어서비스의 적으로
평가되는 아날로그교환기 7백93만회선을 내년부터 2006년까지 1조4천5백억원
을 투입해 단계적으로 철거하고 디지털로 교체하기로 했다.
이같은 망고도화 작업을 통해 통화완료율을 96년 63.7%수준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끌어올려 품질경쟁에서도 이길 수있는 기반을 다진다는
전략이다.
< 윤진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2일자).
시대가 열린다.
한국통신이 독점해온 이 분야에 오는 6월이면 제2사업자인 "하나로통신"이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 99년초부터 본격 사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시내전화 경쟁시대 돌입은 여러가지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97년 5월현재 2천만명을 넘어선 전화가입자들은 서비스회사를
자유롭게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낮은 요금을 받는 사업자를 마음대로 골라
가입할 수있게 되는 것이다.
경쟁체제가 갖는 가장 큰 이점으로 평가되는 대목이다.
또 시내전화서비스의 수준이 기존 음성위주에서 PC통신 인터넷접속등
데이터통신은 물론 동영상을 포함하는 멀티미디어시대로 빠르게 이행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적으로도 제2의 기간망을 갖게돼 유사시 어느 한쪽의 망이 문제가
생기더라도 다른 쪽으로 우회할 수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도 한가지
의의이다.
WTO(세계무역기구)기본통신시장 개방협상결과에 따라 해외사업자들의
국내시장 진입이전에 경쟁구도를 갖추게 됨으로써 국내의 시내전화시장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한 수단이 될 것으로도 전망된다.
우리나라 전화역사의 시작으로는 1885년 9월28일 한성 전보총국이
개설된 때가 꼽힌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전화사업이 시작된 시기는 1902년 3월20일 한성(서울)과
인천간 전화를 개통, 서울 2명과 인천3명등 5명의 가입자가 확보된 것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전화사업은 이후 일제의 강점으로 자생적 발전의 여건이 되지 못한채
침체기에 접어들어 43년엔 불과 4만4천명에 머물렀다.
광복이후 80년대 이전까지도 전화사업은 여타 기간산업의 중요성에
밀려 극히 미미한 수준인 1백73만 가입자로 우리나라 전가구의 3분의
2가 혜택을 받지 못했다.
한국의 전화사업이 비약적인 도약을 맞은 때는 지난 82년1월1일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발족되면서 부터이다.
한국통신은 설립당시 3백50만회선과 3백26만 가입자를 갖고 있었다.
이후 연평균 1조원에 가까운 시설투자등을 통해 매년 1백40만회선이
넘는 전화시설을 지속적으로 공급,88년10월 "1가구 1전화시대"로 평가되는
1천만가입자를 확보했다.
특히 지난 86년에는 국내 처음, 세계 10번째로 전전자교환기(TDX)를
개발, 가평 전곡 고령 무주전화국에서 개통함으로써 전화대량 보급의
길을 열고 87년에는 전국자동전화시대, 1일전화 가설 즉시체제구축등의
기록을 세웠다.
한국통신은 특히 지난 7일 "1가구 2전화"시대를 의미하는 2천만명의
가입자를 확보, 1백인당 43.4회선으로 세계 9위의 통신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러한 역사속에서 전화요금은 지난45년 연60원의 기본료에 1회사용시
10전이 부과되던 것이 60년대에는 기본료 3백원에 한통화당 4원으로
변화했다.
이후 시설확충등을 위해 기본요금과 도수료가 여러차례 인상되다
77년 기본료 1천7백40원에 기본도수(1백도수)까지는 면제하고 1백도수
초과분부터 8원을 적용하다 도수공제제도는 80년에 폐지됐다.
시내통화료는 86년 종전 20원에서 25원으로 인상됐고 93년2월 30원,
94년8월 40원, 96년12월 41.6원등으로 조정돼 왔다.
정부투자기관인 한국통신은 이같은 국내 전화사업에서 이룩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독점체제에 안주, 비효율성을 드러내면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6만여명에 이르는 인력등 비대화된 모습으로 "뒤뚱대는 공룡"이라는
불명예스런 평가를 듣고 있다.
국내경쟁자가 생기면 과연 이와 효과적으로 대적하고 해외거대
통신회사들과 싸움에서 국내시장을 방어해낼 주체가 될 수있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을 받아왔다.
한국통신은 그러나 최근 경쟁시대를 대비한 이른바 "변화와 개혁"
프로그램을 잇따라 내놓고 대응책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과거 연공서열에 따라 때가 되면 자동으로 승진할 수있었던 인사제도를
개편, 관리급에 대해서는 임기제를 도입해 능력없으면 도태되도록 했다.
또 40대의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고 최근에는 사장과 본부장 자회사사장등
부문장이 연간 목표에 대한 계약을 맺고 달성여부에 따라 인사조치를
실시하는 "경영계약제"를 도입, 책임경영체제를 완비하기도 했다.
한국통신은 통신사업에서 경쟁의 승패는 결국 누가 더 우수한 통신망을
먼저 얼마나 갖느냐에 있다고 판단, 네트워크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위해 대형건물 신도시 공단에 기반통신시설을 조기에 공급하고
가입자 통신망의 부족분을 완전히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또 ISDN(종합정보통신망)기능이 있는 전전자교환기(TDX-10A)를 개발,
올해부터 전면 공급에 나서 2002년까지는 시내전화국에 완비한다는 방침이다.
이와함께 시내통신망의 고도화를 위해 멀티미디어서비스의 적으로
평가되는 아날로그교환기 7백93만회선을 내년부터 2006년까지 1조4천5백억원
을 투입해 단계적으로 철거하고 디지털로 교체하기로 했다.
이같은 망고도화 작업을 통해 통화완료율을 96년 63.7%수준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끌어올려 품질경쟁에서도 이길 수있는 기반을 다진다는
전략이다.
< 윤진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