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신한국당이 지난 13일 열린 고위 당정회의에서 현재 추진중인
금융개혁을 잠정 중단하고 다음 정권에 맡기자고 제의해 파문이 일자 정부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이 어제 중앙은행 독립, 은행 소유구조
개편 등 중장기과제를 포함한 금융개혁방안을 빠르면 6월 임시국회, 늦어도
올가을 정기국회에는 제출하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올 연말에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치일정상 연내 금융개혁
작업을 마무리짓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어설픈 정치논리에 밀려 금융개혁작업을 미루거나 흐지부지해서는
안되며 이해당사자들의 눈치를 살펴 개혁하는 시늉만 해서도 안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정책당국과 금융관계자들은 정치일정과는 관계없이 금융계의
해묵은 비리와 병폐를 일소하고 우리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수 있도록 금융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해주기 바란다.

올해초 느닷없이 대통령 직속으로 금융개혁위원회를 발족할 때부터
빡빡한 정치일정과 임기말의 권력누수현상 때문에 과연 정부 뜻대로
금융개혁을 완수할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게다가 한보정국에 휩쓸려 국정이 표류하자 금융개혁작업은 처음부터 김이
새버린 감이 없지 않았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연말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올가을 정기국회에서
심도있는 법안심의가 어렵다고 보고 6월 임시국회에서 주요 법안들을
집중적으로 처리할 방침인데 금융개혁법안까지 처리하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당정협의를 통해 회기연장이 된다 해도 올해 반드시 처리해야할 법안이
79개나 되고 고비용 정치구조개선도 어떤 식으로든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업일정이 촉박하다고 금융개혁을 늦출 수는 없으며 다음 정권에
맡기자는 여당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없다.

우선 금융개혁이 금융계의 사기를 저하시킨다는 시각은 선거에서 표를
잃을까봐 몸을 사리는 정치논리로서 국정을 책임진 여당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

오히려 한보사태로 관치금융의 병폐가 낱낱이 드러난 지금이야말로
금융개혁의 고삐를 죌수 있는 기회이며 또다시 금융개혁을 미루는
것이야말로 금융계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또한 금융개혁으로 금융구조가 크게 바뀌면 경기회복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타당성이 없다.

경기가 나쁠 때 구조조정을 단행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는 2000년까지 국내 금융시장이 완전개방될 예정이므로 더이상
금융개혁작업을 늦출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실정이다.

임기말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금융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지만 시행까지는 몰라도 논의와 대책마련조차 미룬다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본다.

또한 국내외 금융환경의 격변을 고려할 때 금융개혁 내용은 대대적이고
근본적인 구조조정및 정책전환을 담아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