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일금고제작의 김용호회장(60)은 세계적 금고업체인 독일의 람퍼스를
찾아갔다.

갈수록 첨단화돼가는 금고제조기술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람퍼스측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공장정문에서 아예 들여보내주질
않았다.

김회장은 여기서 그냥 돌아갈 순 없었다.

공장을 구경시켜줄 때까지 결코 물러서지 않기로 다짐했다.

적어도 3년정도는 대문앞에서 그냥 버틸 작정이었다.

그는 다음날 아침부터 람퍼스의 정문앞으로 나와 전직원이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 퇴근한 뒤에야 자리를 떴다.

그 다음날은 더 일찍 나와 버텼다.

7일째가 되는 날 람퍼스의 부사장이 정문앞에 앉아있는 김회장에게
다가와악수를 청했다.

"당신 정말 지독한 사람이군요"

부사장은 딱 30분간만 공장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다만 카메라는 자기에게 맡겨놓으라고 요구했다.

"카메라가 무슨 소용이 있나.

내눈이 바로 카메라인데"

김사장은 짧은 시간동안에 그야말로 모든 공정을 자신의 눈에 담아
머릿속에 차곡차곡 입력시켰다.

그에겐 정말 카메라가 필요없었다.

열아홉살부터 금고회사에 취직해 세계최고의 금고털이(?)가 된 그에게
카메라는 사치품에 불과했다.

80년대초 일본의 첨단금고업체를 찾아갔을 땐 더 했다.

공장견학을시켜주지 않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사무실을 슬쩍 빠져나와
화장실 철창을 뜯고 공장안으로 숨어들어가기도 했다.

김회장의 이런 오기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왜 오직 금고제작에 이렇게 집착할까.

그의 금고인생을 들어보면 진짜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

김회장은 중국 만주에서 살다 세살때 유괴돼 서커스단에 팔려갔다.

그곳에서 그네타기 재주로 밥벌이를 했다.

그가 금고제작에 매달리는 것은 무엇보다 이 유괴사건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줄타기처럼 인생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뿌리내리고 있어서가
아닐까.

4년뒤 그는 서울 국방부에 근무하는 어머니와 누나를 다시 찾았으나
6.25피난길에 손을 놓치는 바람에 다시 어머니와 생이별을 한다.

안양을 지날 무렵 비행기폭격으로 눈앞에서 누나가 죽고 그 자신도
심하게 다친다.

고아가 된 그는 미국으로 무작정 건너가 금고회사인 디볼드사에 취직한다.

그는 이 회사에서 세계적인 금고기사가 됐다.

영업사원으로 전세계 50여개국을 누비며 금고를 수리하거나 제작해줬다.

베트남전땐 이름을 떨쳤다.

통킹만에 정박중인 항공모함의 금고가 고장나 군사기밀서류를 볼 수 없게
되자 그는 3분만에 이 문제를 해결해주기도했다.

72년 국내에 영구귀국한 그는 오직 세계 최고의 금고제작에 매달렸다.

처음엔 독일과 일본의 기술에 밀려 곤욕을 치렀지만 이젠 그들이 오히려
선일의공장내부를 훔쳐보고 싶어한다.

70개의 금고관련 국내외특허를 가졌고 7개국어에 능통한 김회장.

이제 그는 전세계 첨단금고시장을 싹쓸이하는 대도를 꿈꾸고 있다.

<중소기업 전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