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의 속성상 경기호전은 대개 수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수출이 늘어나면 기업들이 설비투자에 나서고 이것이 다시
내수경기를 일으키는 식이지요"

한국무역협회 신원식 이사는 경기회복세 여부를 둘러싼 최근의 엇갈린
시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경기동향을 판단하려면 우선 수출동향부터 들여다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종합상사를 비롯한 국내 무역업계가 피부로 느끼는 경기는 여전히
그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수출전선 곳곳에서 소생의 조짐이 보이는건 사실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회복국면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삼성물산 K부장)

지난 1일 통상산업부가 발표한 4월의 수출실적은 전달보다 7% 증가한
1백13억7천8백만달러.

월별 수출실적이 올 1~3월중 내리 감소세를 기록해온 것과 비교하면
확연한 상황의 반전이다.

게다가 4월의 수출증가율 7%는 작년 6월이후 10개월만에 수입증가율(1.6%)
을 앞지른 것이어서 월간 무역적자폭도 모처럼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근거로 일부에서는 우리 경제가 이제 불황의 터널을 빠져 나온게
아니냐는 성급한 진단도 하고 있다.

하지만 무역업계가 보는 수출현장의 기상도는 여전히 저기압이다.

4월의 수출증가율에도 상당한 통계상의 "거품"이 끼여 있다는 분석이다.

즉 4월중 수출이 증가세로 돌아선 것은 비교시점인 작년 4월의 수출실적이
워낙 부진했던데 따른 상대적 효과라는 것.

종합상사들의 중개무역형태로 이루어지는 금수출도 경기상황과 관계없이
통계상의 수출실적만 부풀리는 역할을 했다.

4월의 경우 현대종합상사 삼성물산 (주)대우 등 3개사의 금수출실적만도
4억달러를 넘었는데 이는 작년 4월에 비해 거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4월 통계치의 속사정이 이러니 업계로서는 수출이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소식에도 심드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거품을 감안하더라도 최근의 수출현장 분위기가 2~3개월 전에
비해 호전된 것은 사실이다.

그중에도 철강 유화 조선 등 3개 업종은 수출증가세가 두드러져 수출경기를
부진의 늪에서 이끌어 낼 "3총사"로 주목받고 있다.

(주)대우 관계자는 "철강 유화 등 소재산업의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세계경기가 상승할 것임을 예고하는 지표"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경제는 지난 1.4분기중 5%대의
GDP성장을 기록하는 등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유럽 일본 등의 경기지표도 파란불을 켜고 있다.

이와함께 최근에는 엔화도 강세로 급반전해 그동안 일본과의 수출경쟁에서
밀렸던 자동차 조선 가전등 관련업계의 사기를 높여 주고 있다.

지난달 30일 달러당 1백27.09엔이었던 엔화환율이 최근 1백15엔선까지
절상됐다.

10여일만에 12~13엔 하락한 셈이다.

엔화에 대한 원화환율도 1백엔당 3%이상 올랐다.

그만큼 일본제품에 대한 우리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셈이다.

그러나 요즘 나타나고있는 이런 몇몇 밝은 현상은 외생적 요인일뿐 수출
경쟁력의 근본적인 개선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세계경기가 예상과 달리 호전되지 못한다든지 엔화가 다시 약세로
돌아설 경우 수출부진은 더욱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 임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