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사우나가 위기를 맞고 있다.

사우나란 말은 영어사전에 수록된 유일한 핀란드어.

인구 5백만명의 나라에 자동차보다도 많은 1백60만개의 사우나가 있을
정도로 핀란드인들에겐 생활의 일부이다.

정부는 각료회의를 사우나에서 마치고 외국정치인을 사우나로 초청한다.

사우나광이었던 케콘넨 전대통령은 후루시쵸프나 브레즈니프 전소련공산당
서기장등 거물급 정치인을 사우나로 "모셨을" 정도다.

기업의 주요 비즈니스도 사우나에서 이뤄진다.

노사대화가 잘 풀리지 않아도 양측 대표들은 사우나로 가 협상을 한다.

그러나 요즘 이른바 "사우나 정치"가 시들해지고 있다.

원인은 세가지.

첫째는 여성들의 대거 사회진출이다.

국회의원의 40%가 여성일 정도.

이제 남성 혼자 의사결정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다.

여성들도 사우나를 좋아하지만 남녀가 함께 사우나하는 문화는 없다.

결국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사우나를 하지 않는 한 사우나에서 주요한
의사결정을 내릴수 없게 된 셈이다.

둘째 요인은 경제구조의 고도화.

과거 산림이 경제의 중심이었을때 사우나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첨단산업이 경제를 이끌고 있는 상황에서는 다소 "원시적"으로
여겨진다.

너무 바빠진 기업인들도 사우나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세번째는 가정중시현상.

과거에는 근무후에 사우나에 가서 직장동료나 친구들과 함께 풀고 집으로
갔으나 지금은 곧장 가정으로 간다.

위기를 맞은 사우나메이커들의 탈출구는 해외.

세계최대 사우나메이커인 오이사우나테크의 벨리마르쿠스 펜틸라 수출담당
임원은 "아시아에서 여전히 사우나가 인기를 끄는 등 시장은 끊임없이 확대
된다"며 "지난해 해외매출을 전체 매출(3천4백만달러)의 70%로 끌어올리는
등 해외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사우나 정치"가 사라진다는 것이 국민들의 사우나 즐기는 습성이
없어지는 것을 말하진 않는다.

핀란드인이 존재하는한 "사우나"도 존재할 것임은 분명하다.

<육동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