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5월에 우리는 세종 탄생 6백년을 맞고 있다.

조선 왕조 제4대 임금인 세종은 1397년 4월10일 태어나 1450년 2월17일에
죽었다.

물론 당시의 음력으로 그러니까, 이 날을 양력으로 고치면 5월15일이
된다하여 그의 생일은 흔히 양력으로 기념하게 된다.

올해는 특히 그의 탄생 6백년이 되기 때문에 그 잔치 열기가 더 높은
것같다.

"세종"하면 누구나 먼저 떠 올리는 것은 한글의 발명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세종의 재위 기간(1412~1450)은 여러가지 뛰어난
과학기술상의 업적으로 빛난다.

아니 우리 역사상 세종 때만큼 과학기술이 크게 발달한 시기는 없었다.

세종대의 과학기술이란 당시 세계에서 거의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특히 천문학 수준은 당시의 중국이나 아랍을 능가할수도 있는 수준에
있었다.

그리고 활자 인쇄 화기 농업 의약분야도 크게 발달했고, 도량형과 음악의
과학적 정리도 이뤄졌다.

몇가지 대표적인 것을 들어 보면, 먼저 한글은 우리 민족에게 고유 문자를
제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대한 발명이다.

전세계 어느 민족이 이만한 독자적 문자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또한 한글은 대단히 과학적이다.

우리 민족의 과학적 창의성을 대표하는 민족의 발명 그것이다.

일본의 오사카에 있는 민족박물관에는 세계 문자전시실이 있는데, 그곳에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라는 설명이 있다.

우리의 음운 체계가 중국과 전혀 달라 우리에게 맞는 다른 문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한글은 "민족문자"의 제정을 의미한다.

우리 실정에 맞는 문자를 따로 가짐으로써 우리는 문화를 더 빠르게
흡수하고 생산도 할수 있을 것이 아닌가.

다음에 예로 들수 있는 세종 과학의 업적은 "향약집성방"이다.

이는 "민족의학"의 성립을 의미한다.

고려말부터 "향약"이란 이름을 붙인 책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그 전통이
세종 때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고 할수 있다.

물론 이 표현은 한약 또는 당약이란 말로 나타낸 중국식 의약학과는 달리
한국인 체질과 환경에 맞는 그런 의약학 체계를 가리킨다.

체질과 생활환경이 다른 한국인이 중국의 의약학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는
일이다.

또 중국에만 나는 약초를 한국 사람이 수입에만 의존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약초를 발견해 우리 의약품으로 개발하는 일이 절대로
필요함을 자각한 것이다.

말하자만 그것은 세종대왕의 신토불이사상이라 함직하다.

그리고 세종대의 과학을 세계 최첨단으로 끌어 올렸던 "칠정산"을 생각해
보자.

"칠정산"이란 7개의 운동하는 천체, 즉 해 달 5행성의 위치를 계산하는
방법을 설명한 책을 가리킨다.

1442년(세종24년) 이를 완성함으로써 조선왕조의 천문역산학 수준은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기본적 틀은 물론 중국에서 원(원)시대에 완성해놓은 "수시력"을
서울에 맞게 고친 정도라고 할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여러가지 수학적이고 천문학적인
문제들을 풀어가고, 그것을 기초로하여 한양(서울)기준으로 모든 천체운동을
정확하게 계산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로써 일식과 월식정도는 아주 정확한 예보가 가능했던 것이다.

세종시대의 과학수준이 얼마나 높았던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앞에 소개한 "칠정산"의 경우를 가지고 세계사적 틀에 맞춰보면
충분하다.

1442년에 "칠정산"이 완성되었는데, 그 시기에 전세계에서 일식과 월식을
제대로 계산해 미리 알아 예보할수 있는 민족은 중국 아랍 그리고
조선뿐이었다.

바로 이점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를 다시 한가지 예를 들어 더 설명하자면 일본과 비교해보면 충분하다.

일본에서 우리나라의 "칠정산"에 해당하는 업적을 꼽는다면 1683년
삽천춘해의 "정향력"이 그것이다.

그것은 "일본인이 만든, 일본에 맞는, 최초의 역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역법을 만드는데 결정적 도움을준 사람은 다름아닌 조선
학자 박안기임이 밝혀졌다.

1643년 당시 조선 통신사의 일행으로 일본에 갔던 그는 일본 천문학자를
도와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삽천춘해는 "정향력"을 만들수가 있게
되었다.

삽천춘해 스스로 밝히고 있는 사실이다.

세종대 과학기술 발달의 원인으로는 여러가지를 말할수 있다.

세종 자신이 대단히 관심을 보였던 것을 첫째 원인으로 꼽아도 좋을
것이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과학기술에 열심인데 그것이 발달 안될 까닭이
없다.

또 투자를 많이 했다는 점도 들수가 있다.

물론 과학기술자들을 우대했다고도 지적할 수 있다.

또 꼽을수 있는 것은 외국의 앞선 과학기술을 받아들이기에 전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들수 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큰 틀에서 볼 때 세종대의 과학기술이란 중국의 아류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부분적으로만 우리의 것이 훌륭했다고 할수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쉽사리 세계 최고수준의 과학기술을 만들어 놓을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 세종6백년을 맞아 그를 흉내낼 일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역시 우리는 "민족과학"을 해야겠다는 점이다.

세종이 우리 음운에 맞는 민족문자를 만들고, 우리 체질에 맞는
민족의학을 세우고, 서울 기준의 민족천문학을 건설했듯이, 우리는 오늘
21세기 한국인에게 맞는 그런 "민족과학"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