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파일] MCS 모델 에이전트 조규현씨 .. 모델들의 '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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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반란을 꿈꾸는 화려한 전쟁터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기드라마 "모델"에서 보듯이 전쟁터의 전사들은 모델만이 아니다.
디자이너 패터너 등 수많은 병력이 투입돼야 한다.
그리고 모델 에이전트는 사령부에서 이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이다.
MCS사의 모델 에이전트 조규현(36)씨.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카메라 플래시, 그리고 관객들의 환호의 뒷편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러나간다.
고단한 일상과 뼈를 깎는 노력이 매일같이 계속된다.
광고주와 광고대행사, 그리고 모델이라는 세가지 분야가 그의 활동영역이다.
사회 각 분야가 전문화 세분화되어가는 추세에서 이 세가지 분야를 슬기롭게
조화시키는 전문조율사가 그의 역할이다.
또 유망한 신인들을 발굴해 연기력 높은 탤런트나 가수로 만들어 내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업무.
김원희 이한우 등 유명 탤런트들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이들 탤런트들의 매니지먼트도 현재 병행하고 있다.
현재 탤런트 최진희, 그룹 캐딜락 그리고 몰리 등을 키우고 있다.
특히 그룹 몰리는 다음주에 7개월만에 2집앨범을 내고 본격 활동에
들어가기로 돼 있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가 경영하는 MCS사의 가장 큰 특징은 팀웍.
호주 뉴욕 도쿄 등지에서 사무실을 두고 해외 로케 업무를 담당하며 한국
에서 촬영팀이 오면 현지에서 필요한 업무를 모두 담당한다.
미국의 제니퍼사, 일본의 오스카사와 협력체제를 구축했다.
우리 모델들을 그들의 명단에 올려 해외진출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투는 너무 조용조용해 듣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귀를 기울이도록
만든다.
연예계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침착하고 용의주도한 성격이다.
실제로 대학(중앙대 일어일문과)을 졸업할 무렵까지도 유학을 생각했다.
외국어 능통한 자 우대라고 쓰인 한 모델에이전시의 모집공고를 우연히
본 것이 인생의 전기가 되고 말았다.
약 1년간 그곳에서 일하면서 직접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회사를 차린
것이 지난 87년이었다.
정직하고 진실되게 일하는 것은 그의 좌우명이다.
사무실의 분위기도 화목하고 가족적이다.
직원들도 "독선이 없는 것이 가장 좋은 경영방식"이라는 그의 철학을 이젠
십분 헤아리고 있다.
"5~6년전 50여 에이전시 회사들을 모아서 모델 에이전시의 구심점이 될
에이전시 연합회 "한국 모델에이전시 그룹"을 설립한 적이 있었지요.
모델에이전시의 시스템을 바꿔 보고 싶은 마음에서 였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일찍 시도했었기 때문에 결국 실패로 끝났지요"
그는 모델 에이전시의 시스템 자체에 변화가 없다면 모델업계의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다름아닌 "전속제"의 정착이다.
지금까지는 한 모델이 여러곳의 에이전시에 중복 가입해 폐해가 컸다는 것.
즉 모든 모델에이전시가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5천여 모델 전부의
이력서를 갖고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에이전시도 전문화 차별화된 노하우가 필요한 만큼 전속제가 정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IS2001 등 몇몇 에이전시에서 이러한 노력을 다시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젠 조만간 정착되리라 봅니다"
모델의 자세도 바뀌어야 한다.
매너를 갖추고 끊임없는 자기 개발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시간약속은 중요하다.
프로의식을 갖고 자기 일에 좀더 철저해지길.
모델 지망생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모델 지망생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얼굴에 맞는 분야를 찾는
것이다.
즉 CF모델이냐 패션모델이냐를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활동분야를 결정한 후에는 믿을 만한 모델 에이전시를 찾아가
상담하는 것이 좋다.
패션모델 지망생은 한가지가 더 필요하다.
학원에 등록해 가장 기본적인 워킹부터 차근차근 익혀야 한다.
이때는 수업료가 만만치 않으니 각오해야 한다.
단순한 자신감과 주변의 권유 만으로 모델을 지망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CF모델을 손쉽게 연기자가 되거나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지름길
쯤으로 여기는 "일확천금"식 인식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라고 귀띔한다.
"자질이 전혀 없는데도 모델이라는 직업만 선망하고 찾아오는 이들을
만날 때가 가장 곤란합니다. 모델도 결국은 직업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 김주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0일자).
그러나 인기드라마 "모델"에서 보듯이 전쟁터의 전사들은 모델만이 아니다.
디자이너 패터너 등 수많은 병력이 투입돼야 한다.
그리고 모델 에이전트는 사령부에서 이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이다.
MCS사의 모델 에이전트 조규현(36)씨.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카메라 플래시, 그리고 관객들의 환호의 뒷편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러나간다.
고단한 일상과 뼈를 깎는 노력이 매일같이 계속된다.
광고주와 광고대행사, 그리고 모델이라는 세가지 분야가 그의 활동영역이다.
사회 각 분야가 전문화 세분화되어가는 추세에서 이 세가지 분야를 슬기롭게
조화시키는 전문조율사가 그의 역할이다.
또 유망한 신인들을 발굴해 연기력 높은 탤런트나 가수로 만들어 내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업무.
김원희 이한우 등 유명 탤런트들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이들 탤런트들의 매니지먼트도 현재 병행하고 있다.
현재 탤런트 최진희, 그룹 캐딜락 그리고 몰리 등을 키우고 있다.
특히 그룹 몰리는 다음주에 7개월만에 2집앨범을 내고 본격 활동에
들어가기로 돼 있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가 경영하는 MCS사의 가장 큰 특징은 팀웍.
호주 뉴욕 도쿄 등지에서 사무실을 두고 해외 로케 업무를 담당하며 한국
에서 촬영팀이 오면 현지에서 필요한 업무를 모두 담당한다.
미국의 제니퍼사, 일본의 오스카사와 협력체제를 구축했다.
우리 모델들을 그들의 명단에 올려 해외진출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투는 너무 조용조용해 듣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귀를 기울이도록
만든다.
연예계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침착하고 용의주도한 성격이다.
실제로 대학(중앙대 일어일문과)을 졸업할 무렵까지도 유학을 생각했다.
외국어 능통한 자 우대라고 쓰인 한 모델에이전시의 모집공고를 우연히
본 것이 인생의 전기가 되고 말았다.
약 1년간 그곳에서 일하면서 직접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회사를 차린
것이 지난 87년이었다.
정직하고 진실되게 일하는 것은 그의 좌우명이다.
사무실의 분위기도 화목하고 가족적이다.
직원들도 "독선이 없는 것이 가장 좋은 경영방식"이라는 그의 철학을 이젠
십분 헤아리고 있다.
"5~6년전 50여 에이전시 회사들을 모아서 모델 에이전시의 구심점이 될
에이전시 연합회 "한국 모델에이전시 그룹"을 설립한 적이 있었지요.
모델에이전시의 시스템을 바꿔 보고 싶은 마음에서 였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일찍 시도했었기 때문에 결국 실패로 끝났지요"
그는 모델 에이전시의 시스템 자체에 변화가 없다면 모델업계의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다름아닌 "전속제"의 정착이다.
지금까지는 한 모델이 여러곳의 에이전시에 중복 가입해 폐해가 컸다는 것.
즉 모든 모델에이전시가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5천여 모델 전부의
이력서를 갖고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에이전시도 전문화 차별화된 노하우가 필요한 만큼 전속제가 정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IS2001 등 몇몇 에이전시에서 이러한 노력을 다시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젠 조만간 정착되리라 봅니다"
모델의 자세도 바뀌어야 한다.
매너를 갖추고 끊임없는 자기 개발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시간약속은 중요하다.
프로의식을 갖고 자기 일에 좀더 철저해지길.
모델 지망생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모델 지망생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얼굴에 맞는 분야를 찾는
것이다.
즉 CF모델이냐 패션모델이냐를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활동분야를 결정한 후에는 믿을 만한 모델 에이전시를 찾아가
상담하는 것이 좋다.
패션모델 지망생은 한가지가 더 필요하다.
학원에 등록해 가장 기본적인 워킹부터 차근차근 익혀야 한다.
이때는 수업료가 만만치 않으니 각오해야 한다.
단순한 자신감과 주변의 권유 만으로 모델을 지망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CF모델을 손쉽게 연기자가 되거나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지름길
쯤으로 여기는 "일확천금"식 인식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라고 귀띔한다.
"자질이 전혀 없는데도 모델이라는 직업만 선망하고 찾아오는 이들을
만날 때가 가장 곤란합니다. 모델도 결국은 직업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 김주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