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에 입학 (1967년) 하면서 우리가 만나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꼭 30년이 되었다.

물들인 군복과 교복에 군화를 신고 다니던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금년
4월27일 인촌 묘소에서 부부동반으로 만났다.

우리의 학창시절은 점심 시간은 물론, 빈 강의시간에 짬짬이 만나 시국을
논하고, 월남전을 이야기하고, 앞날을 고민하였다.

이상은 높아서 화제는 고급(?)이었지만 점심은 콩나물국밥이 최고의
성찬이었다.

1971년에 일부는 졸업하고, 1973년 다들 사회인이 되어 명동 "취나루"
에서 만났다.

김기영의 제안으로 호우회라는 12명의 깃발을 걸었다.

처음에는 호우회로 하려다가 너무 학교 티가 난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으로 하였다.

우리는 자라온 환경, 취미, 사는 곳, 종교, 전공 과목이 달랐지만,
서로 모여서 먹고 마시고 돌아다니고 세상의 모든 내용을 우리의 화제로
삼아 대화를 나누는 것이 너무 좋았다.

지난 30년동안 애석하게 2명은 유명을 달리했고, 2명은 미국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러 떠나, 지금은 8명만이 모임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가족들도 모두 모이면 무려 33명이나 된다.

김기영 (고대교수) 손상태 (국민은행 지점장) 신동걸 (삼양사 부사장)
안태성 (자영업) 윤만수 (조흥은행 지점장) 우정광 (이원제지 사장)
이광협 (한화유통 이사) 이길종 (코리아 브이 익스프레스 전무)은 어느덧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2세들은 벌써 성년이 되어 분야별로 사회의 책임을
지니는 중견의 위치가 되어 있다.

우리 호우회는 특별한 색깔, 슬로건, 원칙도 없이 그저 오래된 친구들이
부담없이 언제 어디서 만나도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그런 모임이다.

강태공처럼 무심천에 낚시를 던져 놓고 세상의 욕심, 근심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우리의 영원한 벗인 권혁인, 이종석과 함께 호우회는
이런 모임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