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퇴직자가 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선경인더스트리의 임직원 1천2백31명이 명예퇴직으로 직장을
떠나면서 사회문제로까지 불거져 나온 명퇴바람은 올들어서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92년부터 서서히 시작된 경기불황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면서 명퇴자의 수가
증가세를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가 최근 전국 10인이상 사업체중 2천7백개사를 표본으로 조사한 결과
는 명퇴자 규모가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결과에 따르면 지난 90년이후 작년상반기까지 6만3천명이 경영상 이유로
해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기가 하강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한 92년부터는 연간 1만명이상이
정리해고 됐다.

"정리해고=명예퇴직"이라는 등식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명예퇴직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번 조사결과는 명퇴실상을 보여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노동부가 이에 앞서 지난 3월말 내놓은 명퇴자 통계도 이같은 추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통계에 따르면 지난 93년부터 96년까지 4년간 50대그룹과 은행 투신사
보험사 정부투자기관 등에서 모두 2만1천7백63명이 명예퇴직한 것으로
집계됐다.

노동부는 2백38개 주요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3년 2천9백23명, 94년
3천9백52명, 95년 7천6백99명, 96년 7천1백89명이 명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사대상 2백48개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백3개사가 명예퇴직을 실시
하고 있다고 응답, 명예퇴직이 경영합리화의 유력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반영했다.

부문별로는 정부투자기관이 5천9백85명으로 가장 많고 은행 5천8백19명,
50대그룹 4천7백52명, 정부재투자기관 2천89명, 언론사 7백3명, 보험
4백99명, 증권 1백43명 등이다.

전체 근로자 가운데 명예퇴직자가 차지하는 비율에 있어서는 언론사가
5.91%로 가장 높았다.

정부재투자기관 4.09%(5만1천1백20명중 2천89명), 정부투자기관 4.06%
(14만7천5백40명중 5천9백85명)의 비율을 나타냈다.

은행도 14만4천9백32명중 5천8백19명의 명예퇴직자가 생겨 4.02%의 높은
명예퇴직자 비율을 기록했다.

전체 근로자수가 1백14만4천5백45명인 50대그룹에서는 4천7백52명의
명예퇴직자가 발생, 0.42%로 가장 낮았다.

또 증권 보험 투신 등 은행을 제외한 금융권 역시 0.5~1.0%의 비교적 낮은
비율을 보였다.

직종별로는 사무직이 1만1천7백77명으로 전체 명퇴자의 54.1%로 9천9백86명
(45.9%)이 명예퇴직한 생산직보다 높았다.

동서증권이 3백7개 12월 결산 상장제조업체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해 내놓은
감원동향 역시 명퇴추세를 살펴볼수 있는 통계치다.

이 분석결과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임직원수가 95년말보다 감소한 기업은
60.6%인 1백86개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임직원수도 95년말 65만4천5백29명에서 96년말 64만9천6백54명으로
4천8백75명(0.7%) 줄었다.

95년에는 상장제조업체 임직원수가 전년보다 평균 2.8% 증가했었다.

업체별로 보면 작년 감원비율이 가장 높았던 곳은 여성의류업체인 유림으로
95년 7백75명에 달하던 종업원을 96년 2백50명으로 무려 3분의 2를 정리했다.

이 회사는 일경물산에 인수된후 부실사업부를 정리하면서 대규모 감원을
단행했다.

작년에 최대규모의 명예퇴직을 실시했던 선경인더스트리는 이를 통해
1천2백81명을 감원, 임직원수를 3천6백72명(95년말)에서 2천3백91명으로
줄였다.

전화기및 삐삐 등 통신기기 전문업체로 전환한 한창은 기존 의류사업부를
폐쇄하면서 작년 한햇동안에만 종업원을 1천1백14명에서 5백6명으로 절반이상
줄였다.

흥창물산과 영창악기도 각각 작년 한햇동안 1백33명 6백24명을 감량경영
이라는 이유로 감원했다.

일진은 공장자동화로 1백50명을, 동일방직은 사업부문축소에 따라 3백90명을
줄였다.

신진피혁(30.6%), 조흥화학(30%), 충남방적(29.3%), 진로종합식품(27.7%),
한국전장(25.8%), 중앙제지(24.5%) 등도 감량경영을 한 대표적인 회사로
나타났다.

명퇴자수의 증가는 실업급여 신청규모라는 통계치에서도 확인할수 있다.

명퇴자 증가가 실업급여 신청자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월 한달동안 노동부 지방노동관서에 실업급여를 신청한 근로자는
3천62명으로 하루평균 1백39명의 근로자가 직장을 잃었다는 이유로 실업급여
를 신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1일평균 실업급여 지급액도 96년 8월 1천9백만원에서 96년 11월
1억원대를 돌파한후 석달만에 두배이상 높아졌다.

노동부가 분석한 이들 실업급여신청자 현황에 따르면 50대가 36.9%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26.6%, 30대가 21%였으며 신청자중 76.7%가 남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밝힌 "직장을 떠난 사유"는 도산.폐업이 31.4%, 권고사직 25.9%,
정리해고 8.6% 등으로 나타났다.

기업경영이 어려워서 실업자가 된 경우가 전체의 65.9%를 차지한 것이다.

지방별로는 인천.경기지역이 전체의 21.4%로 나타났고 부산.경남(19.9%),
서울.강원(19.6%) 순이었지만 대구.경북지역의 경우 도산.폐업으로 인한
이직자가 전체 실업자중 48%에 달해 섬유경기 불황에 따라 이 지역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대전.충청(10.8%), 광주.전라지역(11.7%)은 다소 비율이 낮았다.

실업급여 신청자를 연령별로 보면 30~40대가 절반을 넘어 명예퇴직에 따른
감원사태의 영향으로 실업급여 신청자가 늘고 있음을 엿보게 했다.

노동부가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실업급여를 신청한 5천2백87명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30~49세가 52.2%인 2천7백61명으로 나타났다.

박효육 실업급여과장은 "작년 9~10월 대기업 등에서 명예퇴직 등을 통한
대량감원을 한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30~40대의 실업급여 신청추세는 지난 7월 전체 신청자의 27.2%,8월 39.1%
등 40%를 밑돌았으나 9월과 10월 두달간에는 각각 52.9%,64.5%를 기록했다.

물론 이같은 통계치는 과거의 실적을 집계한 것이다.

문제는 올들어 명예퇴직이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띨 것이라는 점이다.

국내 3대 문구업체인 마이크로코리아를 비롯해 출판업체인 고려원이
쓰러지는 등 간판기업들이 힘없이 무너지고 있고 한보와 삼미그룹 등 대기업
이 부도를 맞고 진로와 대농그룹이 사실상 도산위기에 놓이면서 대기업의
연쇄도미노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진로그룹이 최근 임원 50% 감원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부도에 몰린 기업이
생존을 위해 인력을 줄여나갈수 밖에 없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점
에서 사회에 충격을 줬다.

쌍용양회가 최근 10년이상 근속한 생산.관리직 사원 4천여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신청받은 것도 불황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 인력 감원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회사는 명예퇴직 신청자 2백70여명을 심사, 이달말까지 최종 명예퇴직자
를 결정할 계획이다.

< 오광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