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호 <서울여대 교수>

5월10일 정보통신부가 입법예고한 전기통신사업법개정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이용약관에 대한 인가제도폐지를 주요내용으로 하고있다.

지배적사업자의 통신서비스에 대한 이용조건과 요금을 정하는 이용약관에
대한 인가제는 통신서비스시장내의 공정경쟁의 확보와 경쟁성의 제고를 위한
가장 중요한 규제수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특히 금년 2월1일자로 시행된 개정사업법내에서도
단서조항까지 두어가며 지배적사업자의 이용약관에 대한 인가제를 유지시켜
온 정보통신부가 불과 몇개월만에 이와같이 급격한 정책전환을 하게된
배경에 대해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부 고시에 따르면 약관인가의 의무가
있는 대상은 지배적사업자로 분류되는 한국통신과 SK Telecom의 약관뿐이다.

따라서 개정안에 따른다면 이들 사업자의 서비스요금도 신고제로
전환됨에 따라 완전히 자율적으로 결정할수 있게 되어있다.

이와같은 지배적사업자를 포함한 모든 사업자의 통신서비스요금의
결정을 완전히 자율화시킨 경우는 우리보다 규제완화를 앞서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선진국들을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라 하겠다.

90년대에 들어 정보통신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WTO체제하의
대외개방에 대비한 경쟁력의 확보와 정보화시대의 중추적 기반설비로서
효율적인 통신서비스제공을 위한 경쟁적 시장체제의 확보라 할수 있다.

정보통신부가 92년부터 추진한 경쟁정책으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현재
시내전화서비스부문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에 신규사업자의 진입이
이루어져 경쟁기반이 마련된바 있다.

이어서 조만간 시내전화사업부문에도 신규진입이 이루어질 예정으로
우리나라의 정보통신서비스는 전면적인 경쟁의 확대를 눈앞에 두고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경쟁정책은 사업자의 수만 증가시킨채 실질적인
요금경쟁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 인하여 경쟁도입의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있다.

일부에서는 신고제로의 전환을 규제완화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이라
보고 이제 본격적인 요금경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시각이 있지만 신고제로의
전환이 곧 요금경쟁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자율적으로 요금결정권한이 주어져 온 신규진입 사업자들에
의하여 촉발되지 못한 요금경쟁이 신고제의 실시시 지배적 사업자에
의하여 시작될수 있을것이라는 논리를 받아 들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경우 지배적 사업자에 의한 약탈적 요금설정으로 경쟁시장체제의
정착을 불가능하게 할수있다는 점을 경제학의 이론은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모든 선진외국의 규제기관들은 시장내의 경쟁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지배적 사업자에 대하여 완전히 자율적인 요금결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것이다.

특히 수직적 결합의 형태로 유선전화서비스를 제공하고 한국통신과 같은
지배적 사업자의 경우 내부상호보조를 통한 약탈적 요금설정의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물론 현재 한국통신이 제공하는 시내, 장거리 및 국제전화서비스의
요금구조가 원가와 괴리되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

이와같이 왜곡된 요금체계를 교정하고 효율적인 요금체제로의 접근을
위해서는 인가제의 폐지보다는 가격상.하한규제(Price-cap regulation)의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지배적사업자에 대하여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가격상.하한규제하에서는 다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의 경우 서비스의
특성과 시장에서의 경쟁도 등을 고려하여 배스킷을 구성하고 각 배스킷에
대하여 요금상.하한을 적용함으로써 경쟁의 정도가 상이한 서비스간의
상호보조를 저지할수 있게된다.

이번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제시된 지배적사업자에 대한 요금인가제의
폐지는 재고되어야 한다.

우리보다 통신사업경쟁에 앞서 있는 다른 선진국들에서조차 경쟁과
소비자들에 미치는 폐해를 우려하여 실시하고 있지않은 지배적사업자에
대한 요금결정의 완전 자율화를 우리가 굳이 실시할 이유는 없는것이다.

다만 정보통신부의 요금정책과 재정경제원의 물가정책에 의해 이원적으로
행해지는 현행 요금규제방식은 개선되어야 한다.

특히 거시경제정책의 일환으로 물가정책에 의해 그동안 초래되어 온
통신요금구조의 왜곡은 조속히 철폐되어야 한다.

물가당국이 앞에서 제시된 지배적사업자에 대한 가격상.하한규제를
통신요금규제의 원칙으로 받아들인다면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은
범위내에서 통신요금체계의 효율화와 통신사업의 공정경쟁체제를 확보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