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호 < 대우경제연구소 상무 >

정부주도하에 발표된 "부도방지 금융기관 협약"은 정상화가 가능한 기업이
일시적 자금흐름의 경직화로 인해 부도처리되는 것을 막아주기 위한 것이다.

이 협약은 한보.삼미부도 이후 몇몇 대기업의 추가적인 부도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취할 수밖에 없었던 고육지책으로 이해되지만 그 득보다는
실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부실징후 대기업의 당좌거래를 연장해 주는 과정에서 금융기관들의
경영부담이 가중되게 되었고 이에따라 희생여력이 충분한 중소기업들이
오히려 대출이 끊겨 도태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계기어과 경영능력이 부족한 기업주를 걸러주는
금융시장의 기본원리를 마비시킨데에 있다.

정부는 최근의 불황을 경제체질개선의 기회로 삼자고 하였고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경제체질의 개선은 정부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민간경제주체
스스로 시장원리를 체험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취약한 재무구조에도 불구하고 뻥튀기 투자만 능사로 알던 기업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업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금융기관들도 부실한 여신심사에 따른 비용을 치름으로써 여신심사의
중요성을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대형 연쇄부도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나 한국경제에 대한 해외 신인도
하락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이러한 부작용은 금융과 관련한 여러가지
비합리적 관행을 청산하는데서 기대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감안한다면
한번쯤은 겪고 지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정부는 최근의 부도사태에 대응하여 부실기업의 도산방지보다는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처리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따라서 협약을 백지화하든지 아니면 시장원리에 맞게 조속히 개선하여
부실기업에 대한 부도처리여부는 금융시장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올바른 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