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도 일터지만 세계적인 기술을 이대로 사장시킬순 없습니다.

우리 근로자들이 회사를 회생시키고 있는만큼 유능한 인수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합니다"

세계적인 품질의 재봉실을 생산하는 부산의 영참섬유(주) 80여명의 근로자
들의 의지는 결연하다.

근로자들이 한마음으로 똘똘뭉쳐 부도가 난 회사를 서서히 회생시켜 가고
있는 것.

영창은 부도전까지만해도 국내 최대 규모의 생산력을 갖춘 30년 전통의
우수 재봉실 생산업체였다.

특히 "비행기표"라는 브랜드로 국내업체로선 유일하게 미국에 재봉실을
수출해 지난해 1백10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던 영창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몇년전부터 사하구 신평동에 무리하게
공장을 신축하면서부터.

공장신축자금으로 은행에서 50억원을 빌렸으나 경기침체로 영업이 부진해
이자까지 갚지 못하게 되면서 빚더미에 앉게 됐다.

결국 지난 3월 부산은행 등에 1백60억원대의 부도를 내고 말았다.

부도가 나자 회사대표가 잠적해버려 곧 파산할 지경에 처했다.

이에 지난 9년간 노조위원장을 연임해온 조훈제(45)씨가 주축이 돼 회사
살리기에 발벗고 나섰다.

세계적인 기술을 가진 회사를 살리자며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모았다.

그 결과 전체 근로자 1백60여명중 절반인 80여명이 "무조건 회사부터
살린다"는데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정비한후 2교대 근무로 공장가동에 들어갔다.

회사내에서 근로자들의 회사살리기운동에 불이 붙은 것이다.

생산량은 자금부족때문에 부도나기전 월 80여t에서 40여t으로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밖에 있었다.

부도 소식이 퍼지자 일부 바이어들이 등을 돌리는 어려움이 닥쳤다.

조위원장과 근로자들이 전국 대리점을 돌며 호소했다.

근로자들이 회사를 살리기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발길을 끊지 말고 여유를
달라고 소매를 부여잡고 설득했다.

성과는 있었다.

대리점들이 조위원장을 비롯한 영창섬유의 근로자들을 믿기로 한 것.

이에 힘을 얻은 조위원장은 수출도 계속하기로 했다.

(주)영판이라는 섬유전문판매회사와 계약을 성사시켜 미국과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하게 됐다.

재기의 발판을 완전히 마련한 계기였다.

영창은 이처럼 근로자들이 쏟은 각고의 노력으로 월 2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게 됐다.

지난 4월에는 1억원을 웃도는 밀린 공과금도 모두 청산했다.

이달들어서는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래서 사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지난 10일 그동안 밀려왔던 2월분
상여금을 비롯 3,4월분 월급을 모두 지급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특히 이때 5월분 월급까지 앞당겨 지불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월급 봉투를 쥔 사원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김정모 사원은 "그날의 감격은 잊을 수 없다"며 "우리 근로자들의 힘이
이렇게 큰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조위원장은 "사원들이 회사를 운영한 이후 월 2억원이 넘는 금융이자 등의
부담이 유보된데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어 이달부터 흑자로 돌아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창의 기술력과 사원들의 단결력을 인정해주는 유능한
기업인이 영창을 인수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부산=김태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