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거리는 두 청년에게 영신이 조용히 타이른다.

"민 가이드, 지코치의 성미를 건드리지 말아요. 죽어요. 지코치는
압구정동 야쿠자야. 민 가이드, 잘못했다고 빌어요. 지코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쫀쫀한 골프코치가 아니구 일본서 훈련받고 온 야쿠자라구"

그들은 떠나기전에 시나리오를 갖고 떠났다.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고 꼼짝 못하는 게 야쿠자니까, 누가 까불면 그가
야쿠자라고 하라고 말해서 영신은 폭소를 터뜨렸던 것이다.

그녀는 뜯어말리는 척 하면서 민 가이드에게 공갈을 그럴싸하게 친다.

"지코치, 저리 가요. 여행와서까지 주먹을 휘두르면 어떻게 해요? 내가
그래서 안 끼워준다고 했는데, 이모님이 걱정하던대로 또 여기서도
주먹이야. 정말 이럴래?"

그녀는 이종사촌 누나를 진짜로 연기한다.

"내 드러버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두손에 먼지를 털듯 탁탁 털며 어깨를
윽신거린다.

"이봐 민. 너는 누님 아니면 오늘 이가 다섯대는 날아갔어. 의치로
살고싶지 않거든 함부로 입놀리지 말아. 너 다시 개같은 소리 하다가는
가만 안 둬.이 정도로 하고 끝냈을 때 얌전히 입 봉하구 있어. 내가
압구정동 야쿠자라고 입놀리면 너는 먼 이국땅에서 시체가 되어 돌아갈테니,
까불지 마"

"지코치, 정말 누나 앞에서 또 주먹 휘두를 거야? 맹세해! 도무지
불안해서 같이 못 다니겠구나"

그들의 연기는 거의 완벽했다.

그러나 여우같은 민 가이드는 모사꾼이다.

시궁창에서 자란 쥐새끼같이 치사하고 악랄한 놈이다.

이렇게 되자 민 가이드도 천재적으로 연기를 한다.

"형님, 정말 잘못했어요. 그렇게 무시무시한 분인 줄도 모르고
까불었어요. 미안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잔뜩 얼어서 비는 민 가이드가 진정 이것으로 게임을 끝낼 것인지,
아무도 그 후에 일어날 음모와 보복에 대해서는 짐작할 수 없다.

아무튼 일막극은 지영웅과 김영신조의 승리로 끝이 났다.

김영신은 씩씩거리면서 분을 달래고 있는 지코치를 끌고 파노라마호텔의
라운지로 나왔다.

"한잔하구 나면 기분이 가라앉을 거야"

그녀는 진짜 누님처럼 되어 그가 좋아하는 음료수를 한잔 시켜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