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의 92년 대선자금 공개거부와 공직사정 돌풍으로 정국에
냉기류가 조성되면서 여야가 정면격돌로 치닫고 있다.

신한국당은 24일 김대통령이 전날 이회창대표로부터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입장을 표명한 것을 계기로 대선자금문제를 미래지향적으로
매듭지을 것을 국민에게 호소하고 정국을 조속히 경선국면으로 전환해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국민회의와 자민련측은 이날 이를 "국민 배신행위"로 규정, 대통령
하야문제까지 거론하면서 공동 규탄집회 개최를 검토하는 등 초강수로 반발
하고 있어 정국은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고위공직자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이라는 의외의
강수에 접하자 야권이 공동의 위기를 맞았다고 판단한듯 26일 8인 반독재
공동투쟁위 재가동, 김대중총재와 김종필총재의 27일 회동 등을 결정하는
등 대여 공조대열을 발빠르게 정비하고 나섰다.

후보단일화를 놓고 다소 삐걱거리던 양당은 이제 잠정적인 기간이 될지는
모르지만 공조의 틀을 회복하는 상황이 됐다.

공동투쟁위 등에서 논의될 대여투쟁 방안과 관련, <>특별검사제를 통한
대선자금 수사 <>국회 국정조사 요구 <>양당 공동 규탄집회 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양당의 초강수 반발은 특히 지방자치단체장을 포함, 여야 정치인에 대한
사정이 대선정국에서 "야당 발묶기"를 위한 표적사정이 아니냐는 시각에서
출발하는 듯하다.

양당은 김대통령뿐 아니라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에 대한 공격도 강화했다.

이날 국민회의 간부 간담회에선 "대통령은 임기내에 형사소추만 면제될 뿐
조사.수사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이미 자격을 상실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자료가 없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는 등 강경발언이
주류를 이뤘다.

특히 이대표에 대해선 "신한국당 전당대회를 조기에 열도록 김대통령의
동의를 받는 대가로 대선자금을 덮어두는데 앞장서겠다는 것"이라며
"김대통령과 운명을 같이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의 톤을 늦추지
않았다.

자민련도 이날오전 김총재 주재로 긴급 간부 간담회를 열고 "김대통령의
대선자금 공개 거부는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이자 국민에 대한 정면도전"
이라고 규정, 국민회의와의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또 신한국당 이대표가 대선자금 문제와 사정작업을 지렛대로 활용, 국면
전환을 통한 여권내부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기도도 내포돼 있다고 보고
이대표를 겨냥한 공세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에반해 신한국당의 박관용 사무총장은 이날 "대선자금 문제는 여야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그 시대 모두의 책임"이라며 "이제 그런 논쟁은
이 정도에서 끝내고 차제에 그런한 잘못된 관행이 재발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대선자금의 정략적 이용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박총장은 이어 "총재와 대표가 분명한 입장을 정리한 만큼 이제 우리는
대선자금문제를 더이상 거론치 않겠다"고 말해 야권의 공세에 무대응 전략
으로 나설 뜻임을 시사했다.

신한국당 내에서는 그러나 민심이반이 가속화되는 상황을 그냥 방관만
할수는 없어 묘책을 찾아야한다는 지적도 적지않아 사실상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신한국당은 이같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전당대회 일정을 조만간 확정,
정국을 대선분위기로 몰고 갈 예정이나 타당의 공세는 대선이 가까워 올수록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자금에 관한한 국민정서를 무마할 뾰족한 대안이 있을수 없는 여권이
어떤 정치적 승부수로 위기를 모면할지 관심일 수 밖에 없다.

< 박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