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새로운 정-경 관계 .. 송자 <전 연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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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의 흐름속에서 서로의 관계를 계속 새롭게 하여 나가므로서
삶이 생기가 있고 좀더 나은 발전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일을 소홀히 할 때 우리는 현상유지도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
기업과 정치의 관계도 예외일 수가 없다.
부강한 나라나 성공한 기업은 서로의 관계를 잘 유지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 나라가 지난 50여년간 맺어온 기업과 정치의 관계를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쉬울 것 같으면서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여러가지의 결론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지난날의 정치와 기업의 관계가 잘 되었느냐, 잘못되었느냐를
따지기보다는 앞으로는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느냐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세상의 평가는 절대적인 것은 별로 없고 상대적인 것이 많다고 본다.
지난 50여년간의 세상의 모든 나라들의 기업과 정치관계를 보면, 그래도
우리는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6.25의 잿더미의 경제를 잘 되었든, 잘 못 되었든 여기까지 끌어올린
공적은 우리의 정부와 기업의 관계에 가장 큰 점수를 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교육, 근로자들의 근면성, 세계의 여건 등 중요한 것들이
많은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경제가 성장, 발전하면서 필연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정부주도
형에서 민간주도형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정부나 기업인이나 할 것 없이 똑같은
구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민간주도형 시장경제라는 것이다.
구호는 서로 같았지만 이러한 관계를 새롭게 정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동상이몽 속에서 지금까지 온 것이었다고 하면 좋을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필요한 정치자금을 계속 동원하여야 하니까 기업을 규제를
통하여 관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정부가 계속 규제를 하는데는 시장질서를 기업이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가
있어야 되었다.
경제가 잘 되지 않아도 그 이유를 기업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또 기업도 계속 정부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다 보니까 정경유착의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우리
경제와 정치의 큰 문제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은 이러한 관계를 더이상 끌고 갈 수 없게 되었다.
첫째로 우리 사회도 점점 공개적이고 투명한 사회, 경쟁적인 사회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정부가 정치적인 이유로 경제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더욱이 권위주의 정부에서 소위 문민정부로 옮겨지면서 정치권 내부에서도
서로 특혜에 대한 감시를 하게 되었다.
문제가 되면 토론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모든 불공정한 정경유착의
과정이 드러나게 되었다.
둘째로는 세계화의 추세가 자연스럽게 정부 스스로 규제를 풀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 나라 기업만이 민간주도형 시장경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 와 있는 외국기업들도 정부의 간섭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까 규제의 문제는 외교문제가 되기도 하면서 우리의 국제사회
에서의 위상평가를 가져다주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규제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민간주도형 시장경제가 성공을 하려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 윤리적으로
기업을 한다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기업을 하지 않으면 경제질서를 혼란시키는데 시장스스로가
이러한 혼란도 감당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발생되는 비용은 매우 큰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시장질서가 지켜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 되었다.
이제는 정부는 앞에서 기업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기업을 밀어
주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기업은 이러한 관계를 새로 정립하기 위하여 윤리적으로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되었다.
기업의 이윤이 결과로 나타나는 것 못지 않게 그 과정을 철저하게 검증
받기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음성적으로 정치인들과 관계를 맺어왔다면 앞으로는 공개적으로
자기의 신념에 맞는 정치인들과 후원해 주면서 스스로 기업을 경영해 나가는
것이다.
자기 능력을 다하여 윤리적으로 부를 창조하고, 저축하여 필요한 사람들
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기업인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나누어 주는 과정에서 정치인들도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므로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깨끗한 정치가 구현될 수 있다.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여야 할 한국의 기업과 정치를 나는 매우 희망적으로
본다.
지금까지의 관계를 솔직하게 이해하면서 미래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는 항상 관용하지만 미래에는 엄격하여야 한다.
과거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고 좋은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
하지만 그것에 발목이 잡히면 안된다.
우리는 미래 지향적으로 관계정립을 할 때 결과가 좋을 것으로 확신한다.
민간주도형 시장경제로 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는 윤리적으로 기업을 경영한다는 기본적인 명제가 정착
되어야 한다.
이것이 정착될 때 정부도 뒤에서 기업을 도와주는데 부담감이 없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종교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도 크다고 본다.
종교는 착한 사람을 양성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7일자).
삶이 생기가 있고 좀더 나은 발전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일을 소홀히 할 때 우리는 현상유지도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
기업과 정치의 관계도 예외일 수가 없다.
부강한 나라나 성공한 기업은 서로의 관계를 잘 유지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 나라가 지난 50여년간 맺어온 기업과 정치의 관계를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쉬울 것 같으면서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여러가지의 결론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지난날의 정치와 기업의 관계가 잘 되었느냐, 잘못되었느냐를
따지기보다는 앞으로는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느냐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세상의 평가는 절대적인 것은 별로 없고 상대적인 것이 많다고 본다.
지난 50여년간의 세상의 모든 나라들의 기업과 정치관계를 보면, 그래도
우리는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6.25의 잿더미의 경제를 잘 되었든, 잘 못 되었든 여기까지 끌어올린
공적은 우리의 정부와 기업의 관계에 가장 큰 점수를 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교육, 근로자들의 근면성, 세계의 여건 등 중요한 것들이
많은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경제가 성장, 발전하면서 필연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정부주도
형에서 민간주도형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정부나 기업인이나 할 것 없이 똑같은
구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민간주도형 시장경제라는 것이다.
구호는 서로 같았지만 이러한 관계를 새롭게 정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동상이몽 속에서 지금까지 온 것이었다고 하면 좋을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필요한 정치자금을 계속 동원하여야 하니까 기업을 규제를
통하여 관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정부가 계속 규제를 하는데는 시장질서를 기업이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가
있어야 되었다.
경제가 잘 되지 않아도 그 이유를 기업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또 기업도 계속 정부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다 보니까 정경유착의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우리
경제와 정치의 큰 문제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은 이러한 관계를 더이상 끌고 갈 수 없게 되었다.
첫째로 우리 사회도 점점 공개적이고 투명한 사회, 경쟁적인 사회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정부가 정치적인 이유로 경제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더욱이 권위주의 정부에서 소위 문민정부로 옮겨지면서 정치권 내부에서도
서로 특혜에 대한 감시를 하게 되었다.
문제가 되면 토론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모든 불공정한 정경유착의
과정이 드러나게 되었다.
둘째로는 세계화의 추세가 자연스럽게 정부 스스로 규제를 풀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 나라 기업만이 민간주도형 시장경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 와 있는 외국기업들도 정부의 간섭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까 규제의 문제는 외교문제가 되기도 하면서 우리의 국제사회
에서의 위상평가를 가져다주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규제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민간주도형 시장경제가 성공을 하려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 윤리적으로
기업을 한다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기업을 하지 않으면 경제질서를 혼란시키는데 시장스스로가
이러한 혼란도 감당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발생되는 비용은 매우 큰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시장질서가 지켜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 되었다.
이제는 정부는 앞에서 기업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기업을 밀어
주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기업은 이러한 관계를 새로 정립하기 위하여 윤리적으로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되었다.
기업의 이윤이 결과로 나타나는 것 못지 않게 그 과정을 철저하게 검증
받기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음성적으로 정치인들과 관계를 맺어왔다면 앞으로는 공개적으로
자기의 신념에 맞는 정치인들과 후원해 주면서 스스로 기업을 경영해 나가는
것이다.
자기 능력을 다하여 윤리적으로 부를 창조하고, 저축하여 필요한 사람들
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기업인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나누어 주는 과정에서 정치인들도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므로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깨끗한 정치가 구현될 수 있다.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여야 할 한국의 기업과 정치를 나는 매우 희망적으로
본다.
지금까지의 관계를 솔직하게 이해하면서 미래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는 항상 관용하지만 미래에는 엄격하여야 한다.
과거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고 좋은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
하지만 그것에 발목이 잡히면 안된다.
우리는 미래 지향적으로 관계정립을 할 때 결과가 좋을 것으로 확신한다.
민간주도형 시장경제로 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는 윤리적으로 기업을 경영한다는 기본적인 명제가 정착
되어야 한다.
이것이 정착될 때 정부도 뒤에서 기업을 도와주는데 부담감이 없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종교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도 크다고 본다.
종교는 착한 사람을 양성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