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는 흔히 개발도상국의 가난탈출 티켓이자 산업부흥의 돈줄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검은 황금"은 부패와 타락,정치적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란의 공학자 마누처 파만파마이안이 미국 퍼블리셔스 위클리지 편집인인
딸과 함께 쓴 "피와 석유(원제 : Blood and Oil)"(랜덤하우스)는 석유자본이
이란을 어떻게 파괴해 왔는가에 대한 보고서다.

영국 버밍엄대학에서 석유공학을 공부한 파만파마이안은 "20세기초부터
70년대말까지 영국과 미국의 석유재벌은 이란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으며
이 돈이 이란을 질식시켰다"고 쓰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중동국가중 최초로 이란에서 1904년 원유가 발견됐다.

그러나 당시 이란은 영국의 지배아래 놓여 있어서 원유는 이란이 아닌
영국의 소유가 됐다.

영국은 AIOC((주)영국이란석유)를 이용, 이란산 석유를 1.2차 세계대전의
자금줄로 사용했다.

영국은 이란인들을 석유산업에 고용하되 핵심적인 기술이나 경영라인에서는
철저히 배제했으며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로열티를 낮게 책정했다.

이것이 1953년 이란이 AIOC를 국유화한 직접적 배경이다.

영국이 물러간 뒤에는 미국이 몰려 왔다고 저자들은 술회했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이란의 석유를 꿀처럼 빨아 먹는 사이 이란의
산업기반은 파괴됐으며 이란인들의 반서구감정은 커져만 갔다.

이는 이란혁명의 도화선으로 작용, 이란은 반미감정의 발상지가 됐으며
1970년대말 호메이니가 주축이 된 급진적 회교혁명으로 이어졌다.

저자들은 석유산업으로 사회구조가 모두 파괴된 이란이 급진적
회교원리주의에서 대안을 찾았다고 결론지었다.

< 박준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