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날] 산업포장 : 이대일 <대일전복진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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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부터 84년까지 11년간 전복진주양식을 시도했다가 실패하였으나
좌절치 않고 흑산도로 옮겨 다시 5년간 전복진주 양식에 매진했다.
그 결과 90년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최초로 전복폐사율을 10%미만으로
낮추고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이사장은 곧이어 고향인 완도군 신지면에 대일전복진주(주)를 설립하고
종묘와 진주를 생산해 지역 어민의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지난 97년3월 전라남도 도립수산종합관을 건립할 때는 본인이
생산하고 소장중인 진주 7종69점(싯가 6억원상당)을 종합관에 전시토록
기증했다.
95년에는 천연진주의 내부를 살아있는 상태에서 볼 수 있도록 연구해
특허를 받았다.
그는 전복진주양식을 원하는 어민들이 있으면 즉시 찾아가 상담하는
등 정성을 다해 기술을 보급, 어가 소득증대에도 노력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0일자).
좌절치 않고 흑산도로 옮겨 다시 5년간 전복진주 양식에 매진했다.
그 결과 90년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최초로 전복폐사율을 10%미만으로
낮추고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이사장은 곧이어 고향인 완도군 신지면에 대일전복진주(주)를 설립하고
종묘와 진주를 생산해 지역 어민의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지난 97년3월 전라남도 도립수산종합관을 건립할 때는 본인이
생산하고 소장중인 진주 7종69점(싯가 6억원상당)을 종합관에 전시토록
기증했다.
95년에는 천연진주의 내부를 살아있는 상태에서 볼 수 있도록 연구해
특허를 받았다.
그는 전복진주양식을 원하는 어민들이 있으면 즉시 찾아가 상담하는
등 정성을 다해 기술을 보급, 어가 소득증대에도 노력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