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30일 대국민담화는 불과 사흘만에 준비된 것이었지만 여러가지
뒷얘기를 남겼다.
김대통령은 하루 평균 두차례 윤여준 청와대공보수석을 본관 집무실로
불러 "정치개혁에 관해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의 전반적 기조와 골격 등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을 내리고 수시로 "인터폰"을 통해 윤수석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수석이 마지막까지 고심한 것은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김대통령의 "진심"을 설명하고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느냐 하는 대목이었다는 것.
윤수석은 "김대통령은 어떻게 국민의 이해를 구하느냐를 놓고 수많은
나날을 고뇌해왔다"며 "이 부분을 글로 옮기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책임없는 사람들은 김대통령에게 "이것하라 저것하라"고 쉽게 요구
하지만 대통령으로서는 한가지만을 생각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종합해 다각적
으로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상당히 오래 고심을 거듭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날 담화의 화두인 "중대한 결심"은 김대통령의 지시로 내용에
포함됐으며 이에 관해 김대통령은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는 것이 윤수석의
설명이다.
윤수석은 "김대통령은 담화를 내기로 결심한 직후 몇가지 지침을 주었는데
가장 처음 준 지침이 "중대결심"이었다"며 "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어 "김대통령이 "중대결심"에 관한 지침을 줄 당시의 표정과
어조로 비추어 볼 때 이미 무엇인가 굳은 결심을 해놓은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김대통령은 대선자금 문제 등 잘못되고 불행한 우리 정치구조를
이번에 개혁하지 않고서는 차기 대통령도 취임초부터 대선자금 문제에
시달려 국정수행이 불가능해질 것이 뻔하고 그럴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안위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절대로 개혁은
이루어져야 된다는 게 김대통령의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30일 담화발표직전 연설문의 두번째 문장 바로뒤에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에게 죄송스럽다는 말을 드립니다"라는
표현을 직접 추가했다.
김대통령은 "윤수석으로부터 "지난 2월25일 담화에서 사과했고 또 지난
23일 이회창 대표도 이같은 뜻을 전했으므로 이번에 또 그같은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을 받았으나 "그래도 내가 직접 국민앞에
말씀드리는건데..."라고 말한뒤 검은 사인펜으로 크게 이 문장을 써
넣었다는 것.
<>.김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직후인 30일 오전 10시55분께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청와대 경내에 ''꽝''하는 뇌성과 함께 벼락이 떨어져
소방차 2대가 출동하는 등 한동안 소동이 벌어졌다.
낙뢰지점은 비서실에서 10여m 떨어진 도로변으로 청와대 직원들이
즉각 조사를 벌인 결과 일부 군사시설물에 벼락이 떨어진 사고로 밝혀졌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가뜩이나 대국민 담화에 대한 반응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있는 마당에 벼락까지 내리쳐 간이 철렁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 최완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