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과거에 대한 사과보다는 미래의 정치개혁에
중점이 두어졌다.

담화문 제목 자체가 "정치개혁에 관해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으로
대선자금이나 현철씨문제 등 시국에 관한 사과보다는 앞으로의 정치개혁의지
를 국민에게 천명하는데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92년 대선자금의 규모나 내역에 대해서는 "상당한 자금" "막대한 자금"등
포괄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데 그쳤다.

그것도 김대통령 자신이 직접 그만한 자금을 썼다는 고백형식이 아니라
과거의 정치풍토에서 어떤 정당을 막론하고 그만한 자금을 사용했다는 식의
간접적인 화법을 동원했다.

또 "정치권 모두가 반성하고 참회할 일"이라며 정치권의 공동책임으로
돌렸다.

담화문이 논리적으로는 모두 맞는 말이라고 수긍을 하면서도 무엇인가
부족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대선자금에 대한 사과부분이 이같이 미흡하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더구나 김대통령은 대선자금과 관련, "야당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국민회의 김대중총재를 정면으로 걸고 들어가 야권을 자극시키고 있다.

당초 예상과 달리 현철씨 부분에 대한 사과가 전혀 없었던 점도 국민정서
와는 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난 2월25일 담화에서 "아들의 잘못은 곧 아비의 잘못"이라고 말한
바가 있지만 그이후 현철씨가 구속된 점을 감안하면 이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김대통령이 이같은 접근방식을 택한 것은 거듭된 사과로 임기말 국정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맥없이 물러나지 않겠다는 국정장악력에 대한
강한 집착 때문으로 관측된다.

임기 마지막날까지 "할 일은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대선자금을 포함한 모든 정치자금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게 나에게
맡겨진 역사적 책무"라며 역사성마저 부여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국가적 과제인 정치개혁이 정치권의 근시안적인 당리당략으로
좌초된다면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을수 없다"고 밝힌 것도 정치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중대 결심"에 대해 야권이 협박을 한다고 들고 나오는등
"중대 결심"을 둘러싼 여야간 공방전이 앞으로 당분간 정국을 혼미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김대통령은 왜 한보정국및 대선정국을 마무리하는 국민담화문에서
야권을 자극하는 표현을 썼을까.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와관련, "정치개혁을 꼭 이룩하겠다는 김대통령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 관계자는 "정치개혁이 가능한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면 좋겠지만
기간이 너무 짧아 안될수도 있다"며 "국회에서 안될 경우 대통령이 헌법상
갖고 있는 권한을 최대한 활용, 추진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담화문에서 경제구조개혁에 대해 언급, 정치개혁과 함께
병행추진할 것임을 강조했다.

기업의 무리한 팽창을 가능케 하는 경제구조로 인해 투명하지 않은 돈이
정치권에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와관련, "특별한 대책이 있는 것은 아니고 지금 하고
있는 구조개혁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최완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