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기업인] '면방업계 사장' .. 탄력경영 대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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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무단통치에 항거해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가을.
인촌 김성수는 "우리 자본,우리 기술로 우리 옷을 짜서 입자"는
자립경제의 슬로건을 내걸고 경성방직을 설립한다.
근대식 공장이라곤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나마 일인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었던 당시 우리 손으로 방직공장을 건설, 우리 기술로 운전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박영효, 이강현, 김성수의 아우인 김연수 등 당시의 경영자들은 마치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면방업을 이어왔다.
그후 공황과 전쟁을 피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설된 설비를 포함,
면방업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잡게 된다.
노동집약적인 면방업은 공장마다 수천명의 종업원을 고용해 이들이
아침마다 체조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수출산업으로서 외화가득에도 가장 중요한 몫을 담당했었다.
지금으로부터 32년전인 지난 65년만 해도 매출순위 10대 기업에 금성방직
판본방적 경성방직이 2~4위를 휩쓸었고 동일방직(10위)까지 포함, 4개가
랭크됐었다.
50대 기업에는 11개가 들어갈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면방업대표들은 그들이 경영하는 회사가 이처럼 우리나라 근대산업화의
근간이었음을 자부하고 있다.
전경련 경총 무역협회 등 각 경제단체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했고
그 지분은 지금도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면방업에 닥친 현실은 냉혹하다.
시설이 노후화되고 노임이 올라가면서 노동집약산업인 면방업은 마침내
한계에 도달한 듯하다.
방직협회 회원사 가운데 풍한산업 금하방직 영남방직 등 3개사가
법정관리중이고 대농이 위기를 맞는 등 면방업은 누가봐도 고난에 처해 있다.
따지고 보면 "사양산업론"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대농이 금성방직을 인수하던 68년 당시에도 사양산업론이 있었더랬지요.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라 노임이 올라가면 채산성이 떨어져 선진국에서는
손을 떼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던 겁니다"(대농 최진우 사장)
장안의 화제였던 대농의 금성방직.태평방직 인수이전에 이미
"사양산업론"이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사장은 물론 그밖의 많은 면방경영자들은 면방업을 사양산업으로
분류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로 면방업은 60년대이후에도 급성장을 지속, 80년대 후반까지 가파른
신장세를 이어왔고 90년대후반들어 침체를 보이고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진단이다.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70~80년대초까지 면사생산과 원면소비가
줄어들었으나 이제는 생산과 소비가 모두 늘어 70년대보다도 훨씬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등 선진국일수록 천연섬유에 대한 선호경향이 두드러집니다.
따라서 소득이 늘수록 면방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지요"(박창호
갑을그룹회장)
경영자들은 대체로 보수적인 성향을 띠지만 특히 전통깊은 면방업체
경영자들의 고지식함은 널리 알려져있다.
천연소재처럼 올곧기만하고 변화에 대한 신축성이 없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 면방경영자들이 이제는 구조조정과 신기술개발에 골몰해있다.
시설을 시외곽으로 옮기거나 해외로 이전,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축구장보다 넓은 공장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첫째 관심사다.
도심의 공장부지는 그 자산가치때문에 면방경기가 좋지 않을 때에도
주식시장에서 면방업체들의 주식을 "자산주"로서 띄워놓곤 했었다.
면방사장들은 이 부지를 유통시설이나 아파트단지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이와함께 노후시설을 개체, 생산효율이 높아지고 노임이 싼 동남아 등
각국에서 생산이 활발해지면 고비용부담은 많이 경감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서 고급소재를 선보이고 여기에 패션쪽으로도
다각화하면 현재 닥치고 있는 역경을 넘는 것은 어려운 일만도 아닐
것이다.
요즘 면방경영자들은 자주 회동한다.
종전에 경기가 좋았을 때는 설비경쟁이다 뭐다 해서 경쟁에 혈안이
됐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임금협상 기술개발 대정부건의 등 업계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아침일찍부터 저녁늦게까지 머리를 맞대곤 한다.
원래 오랜 세월 같은 업종을 영위하다보니 경영1세대부터 2~3세대까지
서로 잘알고 있던 터다.
언제부턴가 낙인찍힌 "사양산업"이란 멍에를 벗고 면방을 "해가 지지 않는
산업"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이들은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 채자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일자).
인촌 김성수는 "우리 자본,우리 기술로 우리 옷을 짜서 입자"는
자립경제의 슬로건을 내걸고 경성방직을 설립한다.
근대식 공장이라곤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나마 일인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었던 당시 우리 손으로 방직공장을 건설, 우리 기술로 운전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박영효, 이강현, 김성수의 아우인 김연수 등 당시의 경영자들은 마치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면방업을 이어왔다.
그후 공황과 전쟁을 피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설된 설비를 포함,
면방업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잡게 된다.
노동집약적인 면방업은 공장마다 수천명의 종업원을 고용해 이들이
아침마다 체조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수출산업으로서 외화가득에도 가장 중요한 몫을 담당했었다.
지금으로부터 32년전인 지난 65년만 해도 매출순위 10대 기업에 금성방직
판본방적 경성방직이 2~4위를 휩쓸었고 동일방직(10위)까지 포함, 4개가
랭크됐었다.
50대 기업에는 11개가 들어갈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면방업대표들은 그들이 경영하는 회사가 이처럼 우리나라 근대산업화의
근간이었음을 자부하고 있다.
전경련 경총 무역협회 등 각 경제단체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했고
그 지분은 지금도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면방업에 닥친 현실은 냉혹하다.
시설이 노후화되고 노임이 올라가면서 노동집약산업인 면방업은 마침내
한계에 도달한 듯하다.
방직협회 회원사 가운데 풍한산업 금하방직 영남방직 등 3개사가
법정관리중이고 대농이 위기를 맞는 등 면방업은 누가봐도 고난에 처해 있다.
따지고 보면 "사양산업론"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대농이 금성방직을 인수하던 68년 당시에도 사양산업론이 있었더랬지요.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라 노임이 올라가면 채산성이 떨어져 선진국에서는
손을 떼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던 겁니다"(대농 최진우 사장)
장안의 화제였던 대농의 금성방직.태평방직 인수이전에 이미
"사양산업론"이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사장은 물론 그밖의 많은 면방경영자들은 면방업을 사양산업으로
분류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로 면방업은 60년대이후에도 급성장을 지속, 80년대 후반까지 가파른
신장세를 이어왔고 90년대후반들어 침체를 보이고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진단이다.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70~80년대초까지 면사생산과 원면소비가
줄어들었으나 이제는 생산과 소비가 모두 늘어 70년대보다도 훨씬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등 선진국일수록 천연섬유에 대한 선호경향이 두드러집니다.
따라서 소득이 늘수록 면방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지요"(박창호
갑을그룹회장)
경영자들은 대체로 보수적인 성향을 띠지만 특히 전통깊은 면방업체
경영자들의 고지식함은 널리 알려져있다.
천연소재처럼 올곧기만하고 변화에 대한 신축성이 없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 면방경영자들이 이제는 구조조정과 신기술개발에 골몰해있다.
시설을 시외곽으로 옮기거나 해외로 이전,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축구장보다 넓은 공장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첫째 관심사다.
도심의 공장부지는 그 자산가치때문에 면방경기가 좋지 않을 때에도
주식시장에서 면방업체들의 주식을 "자산주"로서 띄워놓곤 했었다.
면방사장들은 이 부지를 유통시설이나 아파트단지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이와함께 노후시설을 개체, 생산효율이 높아지고 노임이 싼 동남아 등
각국에서 생산이 활발해지면 고비용부담은 많이 경감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서 고급소재를 선보이고 여기에 패션쪽으로도
다각화하면 현재 닥치고 있는 역경을 넘는 것은 어려운 일만도 아닐
것이다.
요즘 면방경영자들은 자주 회동한다.
종전에 경기가 좋았을 때는 설비경쟁이다 뭐다 해서 경쟁에 혈안이
됐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임금협상 기술개발 대정부건의 등 업계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아침일찍부터 저녁늦게까지 머리를 맞대곤 한다.
원래 오랜 세월 같은 업종을 영위하다보니 경영1세대부터 2~3세대까지
서로 잘알고 있던 터다.
언제부턴가 낙인찍힌 "사양산업"이란 멍에를 벗고 면방을 "해가 지지 않는
산업"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이들은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 채자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