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지면서 성급한 감은 있지만 휴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도 예약문화가 자리잡으면서 휴가를 조금이라도 더 쾌적하게
다녀오기 위해서는 길게는 몇 달씩 계획을 세우고 예약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진작부터 휴가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핀잔만 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예약문화라도 하면 웬지 과소비나 사치의 한 부류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사실 식당이든 행사든 여행이든 예약절차를 거치는 상품들은 현실적으로
고급스럽고 비싼 것이 대부분인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이기도 하다.

또 우리나라의 예약문화는 이용자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실생활의
일부분이라기 보다는 남들에게 어깨 한번 으쓱하는 것이 오히려 주목적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 또한 없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소개된 호주 존 하워드 총리의 여름휴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하워드 총리는 1주일간 호주의 지방 모텔에서 묵으며 매일 새벽마다
30분 정도를 걸어가서 조간신문과 가족들이 먹을 빵을 사들고 왔고 가족
바베큐파티에서는 직접 고기를 구워 가족은 물론 함께 휴가를 즐기던
여행객들에게 제공하였다고 한다.

휴가를 마친 그는 1주일동안 사용한 모텔사용료 6백58호주달러(한화
47만원)를 직접 지불했고 다음해의 휴가를 위해 미리 부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내각제의 총리라 하면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화려하고 값비싼 휴가를 보낼 수도 있는 위치다.

하지만 그의 휴가는 서민들과 똑같이 치러졌다.

그리고 그가 다음 휴가를 일년전에 예약한 까닭은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살기 좋아졌다고 너도나도 해외로,일류호텔로 찾아나서는 까닭에 이미
일부 항공편과 호텔예약은 모두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들끼리 조용하게 휴가를 보낼 수 있는 관광지 근처의
민박집이나 작은 여관들은 얼마든지 바가지 요금을 받을 수 있는 성수기만
손꼽아 기다리는게 우리의 실정이다.

이런 작은 숙박업소까지 예약이 가능해지는 시대, 그리고 이런 곳을
더 즐겨찾는 국민들이 바로 선진국이고 선진국의 주인공이 아닐까.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