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파일] '에스모드 서울' 졸업반 장정애씨..학벌보단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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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대학졸업장하나 디밀어서는 행세할수 없는 시대다.
사회가 전문화될수록 폭넓은 교양인(?)보다는 전문인을 중용하기 때문.
비록 주류는 아니더라도 "성공의 지름길"로 통하던 대학을 빗겨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대학보다는 전문학원등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밑천삼아 전문인으로
홀로서기 위해서다.
대학졸업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장정애(25)씨.
현재 3년과정의 패션전문학원 "에스모드 서울"의 졸업반이다.
그는 지난 95년 서울예전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자마자 에스모드 서울의
문을 두드렸다.
연극영화과 재학시 무대에 오르는것보다 무대의상 등에 더 흥미를
느꼈던것이 계기가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패션디자이너가 자신의 적성을 살릴수 있는 최고
전문직종으로 여겨졌기 때문.
어느새 2년이 흘렀다.
"겉으로 보기에 패션디자이너의 일이 화려해 보이지만 얼마나 고된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패션쇼를 한번씩 준비할때마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라고 고백한
한 유명패션디자이너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것 같아요"
1백70여명의 입학 동기생중 절반이상이 실습위주로 짜여진 혹독한
교육과정을 견디지 못해 도중하차했다.
에스모드서울의 교육과정은 6주단위로 편성돼 있다.
학원생들은 5주를 마치면 직접 제작한 옷을 제출해 평가를 받는다.
옷을 구상해 디자인하는 "스타일리스트"와 실제 옷을 완성하는 "패터너
(모델리스트)"의 1인 2역을 졸업할때까지 되풀이하는 것.
장씨는 틈틈히 국내외 패션잡지를 뒤진다.
세계패션의 흐름을 쫓아가기 위해서다.
명동 압구정 이대등을 돌며 유행하는 컬러 디자인등 패션경향도
체크한다.
주말에는 옷감을 뜨기위해 동대문 광장시장에도 들러야 한다.
수십벌의 옷을 구상하고 디자인하다보면 어느새 작품제출기한이 성큼
다가온다.
제때에 작품을 제출하려면 며칠씩 밤을 새기 일쑤.
더구나 학원 필수과목인 영어 불어수업에도 들어가야 한다.
그가 지난 2년간 다람쥐 쳇바퀴돌듯 반복한 생활이다.
"일반인들은 남들이 입지도 못하는 옷을 제멋에 겨워 만드는 사람이
패션디자이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허무맹랑한 옷들을 구상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패터너로서 직접 옷을 만들다보니 편하게 입을수 있는 옷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2년동안 스타일리스트와 패터너의 역할을 병행한뒤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은 패션디자이너의 역할이다.
그는 요즘 졸업작품전 준비하랴 수업들어가랴 정신이 없다.
에스모드파리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3점의 작품을 출품해야 한다.
패션계 외부인사가 심사위원으로 초청되기 때문에 사실상 그의
데뷔무대이다.
그는 자신의 진로를 스타일리스트로 정했다.
졸업후에는 패션회사에 취직할 생각이다.
패션디자이너로서 그의 앞날은 밝지만은 않다.
3년동안 학원에 쏟아부은 시간과 돈에 비하면 당분간 턱없는 박봉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
패션전문인력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지만 사회는 여전히 학력위주로
굴러간다.
그러나 이런것들을 각오하지 않고 뛰어든것은 아니다.
몇년하다 그만둘 직업은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학원의 스파르타식 교육은 패션디자이너로서의 자질외에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는 10여년간 현장경험을 쌓은뒤 학원동기 몇명을 규합해 조그만
패션회사를 차리는 거창한 꿈까지 꾸고 있다.
그에게 "학벌의 벽"따위는 염두에도 없다.
< 손성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3일자).
사회가 전문화될수록 폭넓은 교양인(?)보다는 전문인을 중용하기 때문.
비록 주류는 아니더라도 "성공의 지름길"로 통하던 대학을 빗겨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대학보다는 전문학원등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밑천삼아 전문인으로
홀로서기 위해서다.
대학졸업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장정애(25)씨.
현재 3년과정의 패션전문학원 "에스모드 서울"의 졸업반이다.
그는 지난 95년 서울예전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자마자 에스모드 서울의
문을 두드렸다.
연극영화과 재학시 무대에 오르는것보다 무대의상 등에 더 흥미를
느꼈던것이 계기가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패션디자이너가 자신의 적성을 살릴수 있는 최고
전문직종으로 여겨졌기 때문.
어느새 2년이 흘렀다.
"겉으로 보기에 패션디자이너의 일이 화려해 보이지만 얼마나 고된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패션쇼를 한번씩 준비할때마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라고 고백한
한 유명패션디자이너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것 같아요"
1백70여명의 입학 동기생중 절반이상이 실습위주로 짜여진 혹독한
교육과정을 견디지 못해 도중하차했다.
에스모드서울의 교육과정은 6주단위로 편성돼 있다.
학원생들은 5주를 마치면 직접 제작한 옷을 제출해 평가를 받는다.
옷을 구상해 디자인하는 "스타일리스트"와 실제 옷을 완성하는 "패터너
(모델리스트)"의 1인 2역을 졸업할때까지 되풀이하는 것.
장씨는 틈틈히 국내외 패션잡지를 뒤진다.
세계패션의 흐름을 쫓아가기 위해서다.
명동 압구정 이대등을 돌며 유행하는 컬러 디자인등 패션경향도
체크한다.
주말에는 옷감을 뜨기위해 동대문 광장시장에도 들러야 한다.
수십벌의 옷을 구상하고 디자인하다보면 어느새 작품제출기한이 성큼
다가온다.
제때에 작품을 제출하려면 며칠씩 밤을 새기 일쑤.
더구나 학원 필수과목인 영어 불어수업에도 들어가야 한다.
그가 지난 2년간 다람쥐 쳇바퀴돌듯 반복한 생활이다.
"일반인들은 남들이 입지도 못하는 옷을 제멋에 겨워 만드는 사람이
패션디자이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허무맹랑한 옷들을 구상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패터너로서 직접 옷을 만들다보니 편하게 입을수 있는 옷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2년동안 스타일리스트와 패터너의 역할을 병행한뒤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은 패션디자이너의 역할이다.
그는 요즘 졸업작품전 준비하랴 수업들어가랴 정신이 없다.
에스모드파리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3점의 작품을 출품해야 한다.
패션계 외부인사가 심사위원으로 초청되기 때문에 사실상 그의
데뷔무대이다.
그는 자신의 진로를 스타일리스트로 정했다.
졸업후에는 패션회사에 취직할 생각이다.
패션디자이너로서 그의 앞날은 밝지만은 않다.
3년동안 학원에 쏟아부은 시간과 돈에 비하면 당분간 턱없는 박봉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
패션전문인력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지만 사회는 여전히 학력위주로
굴러간다.
그러나 이런것들을 각오하지 않고 뛰어든것은 아니다.
몇년하다 그만둘 직업은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학원의 스파르타식 교육은 패션디자이너로서의 자질외에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는 10여년간 현장경험을 쌓은뒤 학원동기 몇명을 규합해 조그만
패션회사를 차리는 거창한 꿈까지 꾸고 있다.
그에게 "학벌의 벽"따위는 염두에도 없다.
< 손성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