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에 대한 정부의 강압적인 내정 인사를 두고 금융계와 정부가 대립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외환은행은 5일 비상임이사회를 열고 정부가 내정한 홍세표 한미은행장을
은행장 후보로 선출했다.

또 그동안 사퇴여부로 관심을 끌어온 장만화 서울은행장도 이날 사의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공석이된 서울은행장을 비롯 한미은행장 수출입은행장
기술신용보증 이사장에 대한 연쇄 인사가 조만간 이뤄질 전망이다.

물론 모두가 정부가 사전에 마련한 시나리오 그대로다.

금융계에서는 이에 대해 "금융산업을 퇴보시키는 있을수 없는 처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금융노련을 비롯 산업 외환 한미은행 노조는 신임행장 취임저지를 결의했다.

대부분 은행원들도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못하지만 노조의 결의에 적극
동조한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의 무리한 밀어붙이기 인사는 앞으로 금융계에 엄청난 후유증
을 가져올 전망이다.

당장은 비상임이사회의 유명무실화가 문제다.

인사자율화를 명분으로 올해초 정부가 도입한 비상임이사회의 존재 자체를
정부가 부정한 만큼 비상임이사회는 사실상 폐기처분될 상황에 처했다.

은행임원들의 줄대기 경쟁도 다시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특정인사에 잘보인 사람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시중은행장에 오르는
만큼 줄대기경쟁은 극성을 부릴게 분명하다.

그렇게되면 은행장이나 은행임원들의 자율성은 위축되기 마련이고 눈치보기
대출이 판을 쳐 제2의 한보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준법대출의 횡행도 우려되고 있다.

장만화 행장처럼 사회적 사건에 도의적 책임을 지는 관행이 성립된 만큼
은행원들은 아무래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되면 기업에 대한 대출
창구는 더욱 얼어붙을게 뻔하다.

결국 금융개혁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금융산업
은 개발연대의 시절로 후퇴해버린 셈이 됐다.

< 하영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