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고 관능적인 눈빛을 지닌 엠마누엘 베아르와 청초하고 순수한
매력이 빛나는 이렌느 야곱.

각자 독특한 아름다움과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현재 전성기를
구가하는 유럽의 대표적인 여배우들이다.

이들이 각자의 개성을 한껏 드러내며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는 수작
2편이 각각 비디오로 나왔다.

"인도차이나"의 감독 레지 바르지에가 연출한 "프랑스 여인"과 연극배우
출신으로 세익스피어에 정통한 감독 올리버 파커가 만든 "오델로"가 그것.

86년작"마농의 샘"에서 순박한 야생처녀로 나와 깊은 인상을 심어준
베아르는 예술과 인생에 대한 화가와 모델의 갈등을 그린 "누드모델"에서
올누드를 선보여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금지된 사랑" "마리 앙뜨와네트" 등에서 주로 강인하고 열정적인 여인의
이미지를 보여줬다.

베아르와 그녀의 실제 남편인 다니엘 오떼이유 주연의 "프랑스 여인"은
흔들리는 사랑으로 고통받는 여인과 그녀를 최대한 감싸안는 남자의
행로를 그린 작품.

"마농의 샘"에서 오떼이유의 사랑을 죽을 때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금지된 사랑"에서는 그에게 구애하지만 계속 거절당하는 역을 맡은
베아르.

이번 작품에서는 오떼이유와 만나자마자 서로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파리의 교회광장.결혼식을 올린 잔느 (베아르)와 보병장교 루이
(오떼이유)의 얼굴에 웃음이 넘쳐난다.

행복한 순간은 잠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루이는 독일군의 포로가
되고 잔느는 홀로 남겨진다.

잔느는 외로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루이의 동료인 마티아스와 동거한다.

종전과 함께 돌아온 루이.잔느는 루이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용서해
달라고 애원한다.

잔느를 잃고 싶지 않은 루이는 그녀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인도차이나의 전장으로 떠나는 루이.잔느는 끊임없이 그녀를 갈망하는
마티아스의 유혹에 또다시 이끌린다.

바르니에 감독은 두 주인공의 파격적이면서 질긴 사랑이야기를
낭만적으로 형상화한다.

잔느가 번민에 못이겨 붉은 드레스를 입고 광적인 춤을 추는 장면은
보는 이를 숨막히게 한다.

베아르의 관능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

베아르와 오떼이유는 이 작품으로 95년 모스크바영화제에서 나란히
남녀주연상을 받았다.

루이 말 감독의 87년작"굿바이 칠드런"의 여선생역으로 얼굴을 알린
야곱은 폴란드 감독 크쥐스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신성으로 떠올랐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 체제에 의해 상처받는 베로니크와 베로니카의
1인2역을 훌륭히 소화, 93년 칸느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레드"에서는
더없이 착한 마음씨를 지닌 여인을 열연했다.

야곱이 오델로의 아내 데스데모나로 등장하는 "오델로"는 세 번이나
극영화로 제작된 세익스피어의 원작을 각색한 작품.

파커 감독은 마치 스릴러를 연상시키는 원작의 사건전개와 긴박성을
과감한 생략과 빠른 전개로 잘 살려낸다.

원로원 의원 브라맨쇼의 딸 데스데모나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흑인용병 오델로 장군과 관습에 어긋나는 결혼식을 몰래 올린다.

딸의 배신에 부르르 떠는 브라맨쇼는 오델로에게 비극의 씨앗이 되는
말을 전한다.

"아비를 속인 여자이니 틀림없이 남편도 속일 여자니라"

젊고 매혹적인 데스데모나역의 야곱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이중적
이미지를 드러내며 특유의 청순미를 마음껏 발산한다.

오델로역의 로렌스 피쉬번과 벌이는 베드신은 가히 환상적.

세익스피어 전문배우 케네스 브래너는 악마 이야고역을 맡아 고뇌하는
악의 전형을 훌륭히 표현한다.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