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 선임을 둘러 싼 금융계 파문이 갈수록 증폭되는 양상이다.

행장후보추천을 위해 지난 5일 두번째로 소집된 외환은행의 비상임이사회가
정족수미달로 무산돼 오는 9일로 또 연기됐다.

정부의 내정인사에 반발해 상당수의 비상임 이사들이 불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정부가 임명한 산은총재는 노조의 저지로 이틀째 출근조차
못하고 있고 이미 논란을 빚었던 서울은행장은 정부방침대로 취임 4개월만에
도중 하차하게 돼 또다른 파문을 몰고 올 가능성이 커졌다.

이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

은행에서 자율적으로 선출해야 할 행장인사를 미리 내정한 것은 누가
뭐래도 잘못됐다.

우리가 이해할수 없는 것은 한보사태에서 나타난 관치금융의 병폐가
원성의 대상이 돼있고 금융개혁위가 발족돼 경영의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개혁안을 마련하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누가 보아도 이치에 맞지않는 이러한
무리수를 두느냐는 점이다.

한보사태에 대한 책임추궁의 의미도 있을수 있지만 시중은행의 경우
그것 역시 주주들이 할 일이다.

더구나 비상임이사회에서 추천토록 은행장 선임방식이 바뀌어 적용된
것이 바로 금년부터다.

몇 달도 안돼 정부 스스로 이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된다.

정부로서도 그만한 사정은 있으리라 생각되고 또 정부가 내정한
행장후보들이 가장 적임자 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거명되고 있는 인사들 개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건 규정된 제도와 절차를 무시한채 정부가
시중은행장까지 일방적으로 내정해 처리하려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따라서 행장선임은 현행 제도대로 비상임이사회의 자유의사에 의해
이뤄져야 하고 이것이 금융의 자율과 책임을 실천하는 핵심과제임을
정부당국자들이 다시한번 되새겨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같은 원칙은 금융기관 종사자들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인사때마다 불거지는 것이 낙하산 인사에 대한 반대다.

달리 표현하자면 외부인사기용에 대한 거부반응이 지나친 경우가 많다.

경영이 잘못 되면 유능한 외부인사를 최고경영자로 초빙해 경영혁신을
도모하는 것은 순리다.

최고경영자를 내부에서만 발탁해야 한다는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지나친
기관 이기주의로 비쳐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때문에 정당한 절차에 따라 임명된 정부투자기관장의 출근을 저지하는등의
자세는 결코 바람직한 것도 아니고 정당성을 인정받기도 어렵다고 본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 특히 한보사태이후
나타나고 있는 금융경색등으로 정부나 금융기관의 할일이 산적해 있는 지금
인사를 둘러 싼 마찰로 힘을 낭비해야 하는가이다.

은행의 비상임이사회가 파행을 겪으면서 노조도 실력행사를 준비하는등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지만 모든 일은 순리대로 풀어나가는 것이 좋다.

평지풍파를 일으킨 정부는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조속한 수습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