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드링크 파스류 등 단순의약품을 수퍼마켓에서도 팔 수 있도록
약품 유통구조를 대폭 손질하려는 데 대해 약사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어 한.약분쟁에 이은 제2의 약국파동이 우려되고 있다.

대한약사회가 정부가 약국에서만 팔도록 돼 있는 의약품중 일부
제품을 수퍼에서도 판매토록 하는 것은 약사들의 전문성을 침해하는
조치라고 주장하며 대정부규탄대회와 면허증반납 등 집단행동에
나설것을 표명한것.

약사회는 우선 오는 10일 전국이사회를 열고 면허증 반납등 앞으로
대책을 논의키로 했다.

특히 13일엔 과천 제2청사앞 광장에서 1만여명의 약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정부 규탄대회를 열기로 하는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약사회는 "단순의약품이라도 약사가 감독하지 않는 수퍼에서 약을
팔 경우 국민보건에 큰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약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처사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을 주도한 공정거래위원회는 약사회의 이런 주장
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며 구조개선을 강행할 움직임이어서 파동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일단 오는 11일 열릴 경제규제개혁위원회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되 보건복지부가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오도록
했지만 속내는 관철한다는 생각이다.

휴일에는 약을 사고 싶어도 사기 힘들고 또 표준소매가제도에 의해
약을 싸게 파는 것도 죄가 되는 지금과 같은 약품유통구조는 어떻게
하든 고쳐야 한다는 것. 사실 파스류나 드링크류 등 단순의약품은
일반 시민들이 약국에서 약사에게 묻지 않고 사는 게 대부분이다.

이런 의약품을 약국이 아닌 수퍼에서 산다고 해서 약사의 전문성이
무시되는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약사회의 집단반발은 단순의약품을 수퍼에서도 팔 경우 매출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자기중심적 행동이라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지난 5일 열린 경제규제개혁위원회에서도 약품의 수퍼판매에 대해 반
대의견을 낸 보건복지부에 대해 "특정이익집단을 보호하려는 것이냐"는
위원들의 비난이 쏟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약사회도 이같은 시각에 큰 부담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약분쟁 당시에도 국민들의 건강은 도외시한 채 밥그릇싸움에만
열중한다는 비난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있다는
여론의 집중타를 맞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그래서인지 "전국이사회
상정 안건에 약국의 집단 휴.폐업은 올라있지 않다"(신현창 약사회
기획실장)고 투쟁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영세해지고 있는 동네약국의 경우 이번 조치가
현실화되면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약사들의 면허
반납등 강력한 저항이 뒤따를게 분명하다.

이경우 국민들만 골탕먹게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역시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약분쟁과 의약품 표준소매가제도와 관련한 논란으로 가뜩이나
불신을 받아온 터에 또 다시 약사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질 경우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는 국민들의 불만이 쏟아질 것은 뻔한 일이다.

지난 5일 열린 경제규제개혁위원회에서도 대부분의 위원들이 공감하고
있는 의약품 유통구조 개선에 대해 반대의견만 냈지 어떤 대안도 제시
하지 못한 것도 정책부서로서 무책임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
이다.

결국 약사들의 집단이기주의와 정부의 안일한 행정으로 국민들은
또 다시 큰 불편을 겪어야 할 것 같다.

< 조주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