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은 예상밖으로 평온함이 감돈다.

헐렁한 힙합바지나 배꼽티를 입은 신세대를 찾아보기가 오히려 어려울
정도다.

대신 고급브랜드의 화려한 옷들이 활개를 친다.

옷이 날개라던가.

모두가 자신감에 넘쳐 당당한 얼굴들이다.

오랫동안 젊은이의 대표적인 거리로 자리잡은 서울 강남역 사거리 일대의
풍경이다.

곳곳에 들어선 호프집과 당구장 카페에는 제각각 짝을 이룬 젊은이들로
하루종일 붐빈다.

뉴욕제과와 타워레코드빌딩 앞은 초저녁 무렵부터 디스코테크에 가기로
약속한 학생들로 넘쳐난다.

손에 손에 핸드폰을 들고 다시 약속을 확인하는 사람들.

"강남역 하면 뉴욕제과 아니예요"

조현주(K대 3년)양은 이 쪽에서 이뤄지는 모든 약속은 뉴욕제과 앞에서
이뤄진다고 말한다.

종로에 있는 종로서적이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과 같은 위상이랄까.

오고가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쌍쌍.

홀로 거리를 헤매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 곳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주변의 흐름에 물들지 않는 순수한(?) 전통.

한마디로 범접하지 못할 폐쇄성이라고나 할까.

80년대에는 최루탄 냄새가 묻지 않은 젊은이들의 현실도피처로 꼽혔다.

80년대 중반 이 곳은 디스코테크에 찾는 젊은이들의 물결과 휘황찬란한
밤거리를 자랑했다.

강남 부유층 자녀들이 자주 드나들어 성토를 받기도 했지만 누군들 시대를
탓하지 않았으랴.

강렬한 비트에 맞춰 흐느적 거리는 몸짓은 그 시대 젊은이들의 또 다른
고민의 현장이었다.

대학로 서울대앞 녹두거리가 모진 시대만큼이나 독한 소주를 권하는 거리
였다면 이 곳은 그 모든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의미의 해방구
였다고나 할까.

격렬했던 한 시대가 지나가고 사회변화보다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 앞서
나가는 90년대.

지금도 이 곳은 나름대로의 전통을 유지한다.

"튀는 것"이 지상모토인 신세대 문화가 침범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순수함 (?)이 유지된다는 것.

과거의 전통과 신세대적 문화 사이에서 정체성을 상실해가는 신촌이나
녹두거리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그래서 튀지도 않지만 저속하지도 않은 고급사교문화의 분위기를 자랑한다.

역시 강남의 자랑이자 한계라고나 할까.

뉴욕제과뒤에 있는 디스코테크 "니콜"은 이런 면에서 대표적인 곳.

23세 이상은 입장 사절이다.

이 곳만이 아니라 이 지역은 연령에 따라 입장을 제한하는 곳이 많다.

"나이먹은 사람들보다는 그래도 한창때인 물좋은 손님들이 많아야 분위기도
좋고 장사도 잘된다"는 얘기다.

친구들과 약속을 강남역 주변에서 자주한다는 김영현(24.Y대 4학년)씨는
"깔끔한 문화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친구들이 많아
편하게 놀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도 주고객이 대학생인 탓인지 호프집 등 업소의 가격은 그다지 비싼
편은 아니라는 평이다.

이 곳에서 3년째 영업을 한다는 "밀키웨이" 카페 주인은 "3년동안 네번이나
실내장식을 바꿨다.

요즘 젊은이들 취향에 맞지 않으면 뒤안길로 사라지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하루에도 몇번씩 뒤바뀐다는 신세대 문화취향을 드러낸 말이다.

용인이나 수원에 캠퍼스를 둔 대학을 오가는 통학버스를 이용하는 대학생들
이 주고객인 강남역 사거리.

곱게 차려입은 여인처럼 깨끗하고 상큼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이 거리를
오늘도 젊음이 뒤덮고 있다.

< 김준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