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국무총리가 취임일성으로 강조했던 "규제혁파" 작업이 부처이기주위와
기득권층의 반발에 부닥쳐 구두선에 그치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규제개혁차원서 허용할 예정이던 단순의약품의 소매점 판매가 약사들의
강력한 반발로 상당기간 늦춰지게 됨에 따라 소비자단체 뿐 만 아니라
일부 경제규제개혁위원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단순의약품의 소매점판매허용, 약품의 표준소매가가격표시제 철폐, 제약회사
의 종합병원 직거래 허용 등의 의약품 구조개선방안은 지난 5일 경제규제
개혁위원회에서 보건복지부를 제외한 모든 위원들이 찬성했었다.

그러나 약사들이 대정부규탄대회와 약사증 반납 등 집단행동에 나서겠다며
강력 반발하자 국무총리실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국무총리실이 의약품 구조개선방안을 총리주재의 규제개혁추진회의에
올리지 않고 총리자문기구인 의료개혁위원회에 넘기기로 한 것.

국무총리실과 공정위는 의약품 구조개선방안을 계속 협의하겠다는 입장
이지만 약사들의 반발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여 이 분야의 규제
개혁은 상당기간 표류할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공정위는 의약품 구조개선외에도 건설시공업체도 설계업무를 할 수 있도록
설계시장부분개발을 추진중이나 설계사들의 반발로 경제규제개혁위원회
상정여부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또 사업자단체의 정부위임업무를 대거 없애는 공정위의 방안도 관련단체의
반발이 예상돼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국무총리실은 방송광고를 자율화하는 방안을 경제규제개혁위원회
에 올리지 말도록 공정위에 주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이 민감한 사안의 대부분의 진행과정에서 유야무야되자 상당수의
경제규제개혁위원들은 위원회 존립자체에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공정위의 의약품 구조개선 방안에 찬성입장을 표명했던 한 위원은 "개선
방안을 규제개혁추진회에 올리지 않는 것은 국무총리실의 월권행위이며
경제규제개혁위원회를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위원회 멤버인 경기화학 권회섭사장은 "위원들이 모두 찬성한 내용을
최종의결기구인 규제개혁추진회의에 올리지 않아 경제규제개혁위원회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해당과제들은 이미 과제선정단계에서부터 기득권층의 반발이 예상됐었던
만큼 경제규제개혁을 전담하고 있는 공정위가 어느정도의 의지를 보여
주느냐가 주목된다.

< 김호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