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영 <미 하워드대 교수>

한국은 작년에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였다.

당시에는 경제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반대속에서도 OECD 가입이
우리 경제가 선진경제로 부상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이 더컸던 만큼 대통령과 정부에 의해 강력히 추진되었다.

이제는 적어도 명목적으로는 선진국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여러 현상은 우리나라가 결코 선진국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각 부문에서는 부정부패가 백일하에 드러난 데다 미국내의 정치활동과
관련하여서도 한국인들은 한국식 뇌물관행을 답습한 사례들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 일련의 사건과 논의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고들이 표출되고 있다.

우리 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미친 한보사태를 고려할 때 문제는 한보만
그러하였는가 하는 데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구습으로부터 탈피하여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금융개혁을 논의하여야 한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오랜 관치금융으로 금융이 부패와 뇌물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금융시장에 대한 행정부와 정치적 경제적 이해 그룹의 간섭을
철저히 배제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금융개혁의 중요한 요소로서 한국은행의 중립성 강화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금융과 관련하여 엄청난 비리가 발생한 현재의 한국에 있어서는
이를 아무리 강조한다 하더라도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정부도 이에 대해서는 결코 반대하지는 않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감독권을 가지려는 의도가 강하다는 데 있다.

현행 감독이 행정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감독의 전부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행정으로서의 감독은 상당부분이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소멸돼야
할 것들이다.

인허가권 등과 관련한 각종 규정들도 투명성을 높여 정부의 자의적 개입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따라서 행정에 의한 정부의 시장개입은 정당화될 수 없다.

더욱이 감독기관을 통합하려는 것은 권력분산을 통한 민주화의 달성,
시장경제의 구축 필요성 등의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감독제도를 아무리 잘 설계하더라도 시장요인에 의한 금융기관의 도산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결국 금융제도의 안정성도 시장규율을 적극 활용하여야 달성이 가능하다.

즉 주식시장 정보시장 고객관계 등을 통한 철저한 경영평가가 금융제도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바른 길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막강한 감독기관을 통해 금융제도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것은 과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서 미래를 내다보는
사고방법은 결코 아니다.

뿐만 아니라 감독기관의 통합은 금융시장간 칸막이가 낮아지는 금융의
유니버설화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

유니버설 뱅킹 추세는 모든 금융기관이 금융 보험 증권 등 세가지
금융업무를 모두 다 하여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보다는 각 금융기관의
특성에 비추어 세가지 기능을 적절히 조합하여 특화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도 오히려 감독기관의 전문화가 앞으로는 더욱
효율적인 제도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다양화된 감독기관을 전제로 피감독자(금융기관)가 감독기관을
선택하는 것이 국민에게 봉사하고 절대적 권력의 행사를 방지하는 데
효율적인 메커니즘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감독제도를 고려함에 있어서도 경쟁의 원리나 수요자선택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각 금융기관의 자율적 판단에 의거하여 안정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경제원리에 부합된다는 점을 간과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금융기관, 특히 은행은 일상적인 업무 과정에서도 중앙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할 수밖에 없다.

채권자는 채무자가 채무상환능력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또한 금융정책의 목적인 물가안정도 금융시장의 안정성 없이는 달성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권을 보유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지금 한창 논의되고 있는 이 주제는 결코 일개 계층이나 우리 세대의
이해에 의해 결정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감독제도를 포함한 중앙은행 제도개편은 우리가 다음 세대에 어떠한
제도를 물려줄 것인가 하는 중대한 과제이다.

OECD 가입은 우리가 후손들에게 선진국이라는 제도적 틀을 넘겨주기
위함이었다.

선진국에 맞는 제도적 기틀이 없이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수 없다.

금융의 선진화, 즉 정부와 정치세력으로부터 금융의 명실상부한 자율성
확보, 이것이야 말로 선진경제의 필수조건임을 명심하여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