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는 봄 가을이 없다.

공업단지가 입주해있기 때문인지 겨울에서 바로 여름으로, 여름에서
곧 겨울로 계절이 바뀌는 느낌이다.

그래선지 이달초에 찾은 한화종합화학 울산1공장은 이미 여름 한 가운데
있었다.

마침 울산석유화학단지의 연례 정기보수 기간이어서 곳곳에 장비가
널려있고 이리 저리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부산하게까지 느껴졌다.

헐거워진 파이프라인 조인트를 다시 조이는 사람들의 땀방울과 이러저리
튀는 용접기의 불꽃들이 후끈후끈한 열기를 전해왔다.

열기가 느껴지는 건 현장뿐만이 아니다.

정기보수 기간을 이용해 실시되고 있는 사원교육 현장도 만만치 않았다.

배관강좌 용접교육 컴퓨터특강 등이 진행되는 교육장은 새로운 기술과
정보를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사원들의 진지함이 넘쳤다.

"일부에선 벌써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말도 나오는 모양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공장은 가장 적은 비용을 들여 최대의 생산성을 올리는데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이 공장의 경영혁신운동을 현장에서 주도해온 어윤수 개혁추진팀장은
서울에서 일고 있는 경기저점 논쟁 따윈 관심가질 필요도 없다는투다.

한화종합화학의 전국 8개 사업장 가운데 지난해 가장 좋은 성적표를
낸 울산1공장의 불황극복 전략은 어팀장의 말대로 "원가줄이고 생산성
높이는" 기본원칙에 충실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호들갑스럽게 옷을 갈아입지 않고 튼튼한 체력을
기르는 일에만 열중해왔다는 얘기다.

울산1공장의 불황대비 노력이 시작된 것은 지난 89년.그룹차원의
경영혁신 활동인 "프로(PRO) 2000" 신풍운동을 전개하면서부터다.

지난해 전국 각 기업에서 유행처럼 번진 각종 원가절감운동을 울산1공장은
이미 이때부터 습관화시켜온 것이 대부분이다.

한화는 이 때 부터 "사무관습개혁 8대 과제"를 선정해 결재단계를
3단계로 줄였고 문서와 서류의 양도 기존 보다 30% 이상 감축시켰다.

"프로 2000"이 "준비운동"이었다면 94년에 시작된 그룹차원의 경영혁신
운동인 "제3의 개혁"은 근육을 만들기 위한 "집중 훈련"이었다.

이 때 도입된 것이 한화그룹 특유의 경영혁신도구인 HIMS(한화
혁신경영체제 : Hanwha innovation management system)다.

최고의 벤치마킹대상과 명확한 중.장기전략 목표가 수립되고 세밀한
시행계획이 마련됐다.

임원과 부서장의 현장체험근무,슬림화를 골자로 한 조직개편 등이
실시됐고 품질제고활동이 특히 강화됐다.

지난해 10월까지 3년 가까이 "제3의 개혁"운동을 벌이면서 성과는
눈에 띄게 나타났다.

94년 2백84억원이었던 이 공장의 매출이익은 작년엔 4백53억원으로
늘었다.

신제품 개발건수는 94년보다 50% 증가한 반면 가성소다(CA)제품의
제조원가는 오히려 18%가 줄었다.

스스로 평가하기에도 공장기술력 지수가 61.2에서 3년만에 72.9로
한 차원 높아졌다.

지난해 대부분의 업체들이 적자 경영으로 추락했을 때 이 공장 임직원
4백명은 한 사람당 1억1천3백만원의 매출이익을 냈다.

그것도 회사 전체로서는 2백56억원의 적자를 본 시점에서 낸 성과였다.

이준희 울산1공장장(전무)은 이를 지속적인 교육훈련의 결과로 보고 있다.

생산직 근로자들을 대상으로한 멀티스킬(multi-skill : 다기능)교육이
이제 성과를 드러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 3년간 이 공장의 인원은 4백10명에서 4백명으로 10명밖에
줄지 않았지만 1인당 매출액은 28%, 1인당 매출이익은 64%나 늘었다.

울산1공장은 그러나 결코 지금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는다.

언제 갑자기 혹독한 추위가 몰려올 지 모른다며 최악의 상황을 설정해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그래서 이번 정기보수에서는 외부기능인력을 절반가까이 줄였다.

대신 다기능을 가진 사원들이 용접봉을 들었다.

"왜 필요없는데 웃돈을 쓰느냐"고 말하는 현장사원들의 웃는 얼굴에서
울산공단엔 왜 느긋한 봄이나 가을이 없는 지 알 것 같았다.

< 울산=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