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권자인 외국업체가 국내독점수입권자와 연명으로 병행수입업체를
상표권침해 등의 사유로 법원에 제소,병행수입제도가 드디어 법정에 오르게
됐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영국 버버리(Burberrys)본사는 국내 버버리 독점
판매업체인 유로통상(회장 신용극.52)과 공동으로 최근 버버리제품의 병행
수입업체인 EMEC(대표 황인업.42)와 EMEC의 대리점(대유통상 서호통상
김옥숙 등)을 상대로 서울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장에서 버버리 본사와 유로통상은 병행수입업자들이 <>부정경쟁방지법
을 위반하고 <>상표권을 침해해 버버리 본사는 물론 독점수입업체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병행수입제도란 독점수입권자에 의해 특정 외국상품이 수입되는데도
제3자가 다른 유통경로를 통해 독점수입권자의 허락없이 수입할 수 있는
제도로 지난 95년 11월 국내에도 도입됐다.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기존의 독점수입업체와 병행수입업체 쌍방간에
불공정거래나 사업활동방해혐의 등으로 공정거래위에 신고한 사례는
있었으나 외국본사가 개입, 법정소송으로 비화한 것은 처음이다.

원고측인 버버리본사와 유로통상은 EMEC가 외국에서 버버리를 수입해
대리점에 공급하면서 각종 선전물을 제작하고 매장의 장식 간판사용 등
매장관리, 버버리표장이 부착된 포장지 쇼핑백까지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테리어나 명함 포스터 등의 경우 유로통상이 영국본사에서 제공받는
것을 그대로 모방해 쓰고 있으며 이는 부정경쟁방지법(제2조 제1호)에서
금지하는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피고인 EMEC측은 "병행수입허용으로 소비자들이 외국의 생산.
판매업자와 국내 독점수입업자의 횡포에서 벗어나 가격과 서비스로 승부하는
진정한 경쟁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며 "해당병행수입제품에 대한 상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제품을 판매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는 정부가
병행수입을 허용하는 취지에 어긋난다"고 반박했다.

EMEC측은 버버리와 유로통상의 국내법위반여부를 검토, 법적대응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혀 맞제소의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번 소송으로 병행수입업체의 상표사용행위가 금지될 경우 의류 자동차
등 그외의 많은 품목을 병행수입하고 있는 다른 수입업체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내에는 조지알마니 베르사체 질샌더 제니 등 일부 유명해외
브랜드를 비롯 벤츠 BMW 볼보 사브 아우디 등 외산자동차의 병행수입 케이스
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자동차 공식수입업체들이 공식수입업체로서 애프터서비스의 장점을
강조해 병행수입업체에 맞서고 있는데 비해 의류업체들의 경우 효과적인 대응
을 해오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소송의 향방에 따라 관련업체는 물론 소비양태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채자영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