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경귀는 꼭 오늘의 한국정국을 두고
한말 같아 걱정이다.

연일 조석으로 텔레비화면에 비치는 용이란 이름들의 애국의 외침은
국민을 안심시키기 보다는 저들이 야기하는 혼돈이 정치뿐 아니라 심각한
난경에 들어선 경제, 허영과 무질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 사회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않을까 우려를 누르기 힘들다.

매스컴, 특히 영상매체의 위력은 커서 한보-김현철 사태에서 대선자금
공개 대치로 초점을 옮긴지 불과 몇주사이에 이젠 완전히 자칭 용들의
재치자랑에 세월가는 줄 모른다.

물론 관심의 초점이 급작스레 옮겨 감으로써 득을 보는 진영이 있겠으므로
현재 각 매체간에 붙은 대선주자 선뵈기 경쟁을 순수하게만 볼수 없다는
의구의 소리도 있다.

언필칭 돈 안드는 선거를 하려면 텔레비젼 토론이 첩경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또 이미 치러진 두세차례 릴레이식 토론으로 대선 예비주자들의
면모가 유권자에게 노출됨으로써 주자간의 우열이라든가 적 부적이 얼만큼
유권자들 마음에 잡히는 이점을 갖다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 몇가지 문제점과 부작용을 우려치 않을 수 없음은 불행한
일이다.

무엇보다 선거일을 멀리 앞둔 조기(조기)과열 양상에서 경제 사회
남북문제 등 실로 미증유의 난제들이 어느새 뉴스의 초점에서 수면아래로
쳐져 간다는 사실이다.

만일 이로해서 일부 대기업의 도산설마져 끊이지 않는 심각한 경제난의
타개책입안, 존폐의 기로에 처한 북한문제 처리에 실기를 하는 사태가
야기될 경우, 아마도 천추에 남을 한을 만들지 않을지, 아무도 자신있게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다음 문제는 고비용 정치, 돈 많이드는 선거가 만가지 병의 원인이라는
누적적 체험을 이번에야 말로 전설적으로 살려야 하는데 지금 되어가는
형국으로 봐서는 여전히 궤도이탈 대선이 되풀이되려는 우려가 심각한
형편이다.

여권에서 대의원 포섭을 위한 자금살포의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아니라는
확고한 보장은 아직 아무데도 없다.

다음은 이른바 합종연횡으로 8~9 두자간에 편을 짜서 자리를 갈라갖자는
움직임이 구체화되는 것을 바라볼때 그것이 의외의 또다른 부작용을
가져오지 말라는 보장 또한 아무데도 없다.

잠시 여야를 비교하자.

언제까지나 봉건영주같은 자존에서 아집을 꺾지 못하고 단일후보 옹립을
못하는 야권에 실망을 지나 포기를 하는 국면은 많다.

그러나 그런 야권에 만심한듯 마치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노릇하듯
용을 자칭하는 수많은 자천자들이 줄짓는 여당의 상황이 국민에게 주는
실망은 크다.

30여년 혜택을 누리면서 누적된 실정에 반성커녕 대권병만 만연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다.

방법은 하나다.

뉴스의 초점이 옮겨간데서 득을 보는 임기말의 김영삼정부가 여당을
필두로 철저히 돈 안쓰는 선거, 저비용 정치를 기댈 실현하는 길외엔
대안이 없다.

그런 사명감이라면 김대통령의 남은 임기 봉사를 국민은 격려하고
관용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