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한보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당정쇄신 차원에서 발탁된 고건
총리가 12일로 취임 1백일을 맞는다.

지난 3월5일 취임직후 "나는 지성감민의 자세로 행정을 통해 국민에게
봉사할 것"이라며 "행정 총리"로서의 의욕을 과시했던 고총리는 그 후 큰
과오없이 약속을 그런대로 잘 지켜왔다는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취임 일성이었던 "규제 혁파"는 여전히 고총리의 주요 테마.

10일 국무회의에서 규제 혁파의 상징이랄 수 있는 "행정규제 기본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고총리는 정치권이 혼미할수록 내각만이라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며
그동안 "내각의 중심잡기"도 특별히 강조해왔다.

국무위원 정책토론회를 새로 도입해 경제살리기, 공직기강 등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는가 하면 각부처 실.국장을 오찬에 초청, 차질없는 국정 수행을
당부했다.

경제살리기 대책의 하나로 중소기업도 자주 찾아 경영애로 타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는 노력도 보였다.

그러나 정권 말기라는 시기상 운신의 폭이 그다지 넓지 못하다는 지적이
그를 따라다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실제로 "고총리가 정부 초기나 중반쯤에 왔다면
훨씬 더 많은 개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총리실 주변에서는 정부 전체가 한보사건 등으로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데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그를 DJ이후 "잠재적 호남주자"로 지목, 은근히
견제하는 분위기도 있어 고총리 스스로 운신폭을 좁히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국회상임위원장 초청 만찬에서 "구룡치수"(아홉 마리의 용이 물을
다스리면 서로 책임을 전가해 오히려 가뭄이 든다는 뜻의 고사성어)라는
말을 했다가 후에 이를 해명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 김선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