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잘못에 대하여 .. 이종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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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이란 임금이 갖고 있던 커다란 덕목의 하나였던 것같다.
옛글에는 마음의 자세를 일러 "순리는 공을 재는 것이요 욕심을 따름은
사를 재는 것이요"라고 정의하고 있다.
창조적인 것을 갈고 닦아 함축적으로 표현했던 옛학문에는 여과된 내용
외에 넘치는 감성의 낙수가 있었다.
그것이 사회 전반의 문화를 형성하면서 미덕과 미풍의 기반을 만들었다.
조선조 임금 한분은 "자성"이란 자신의 글에서 "선으로써 행하지 못한
것은 성현 앞에 불초인 것은 물론 조상에게도 불초다"라고 적었다.
또 중용의 말씀을 들어 잘못의 원인은 기질에 있고 기질이란 배워 알게
됨으로써 생기는 것으로 그것이 쌓여 공과(공과)가 된다고 했다.
"자성"편을 읽으면 임금이 잘못을 깨닫고 얼마나 후회했으면 자신이
쓴 "어제 자성편"을 부끄럽다고 세상에 내놓지 못하게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글속에 들어있는 잘못에 대한 가르침 역시 바로 자신을 향한
간곡한 지적임을 알게 된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사전에 주의하라는 통치규범 관련 문구도 눈여겨
볼만하다.
"옛사람이 어떻게 만들었는가를 물어서"라는 귀절이 있는가 하면 "덕의
가르침으로 정치를 모의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욕심은 선으로써 여하히
하며""아주 미미한 것도 깊게 통찰하여 현신하고"등도 있다.
진리는 언제나 듣는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
선조들이 세운 고유한 진리를 담은 언어를 소생시킨다면 그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가치와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또 자연에 대한 비유가 많아 삭막한 현대인의 마음을 부드럽고
편안하게 해줄 것임에 틀림없다.
한줄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 거대한 비용을 들이기보다는 옛글과 말을
살려내 한때 모든 사람의 뇌리에 박혔던 반공표어처럼 일상화시켰으면
좋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3일자).
옛글에는 마음의 자세를 일러 "순리는 공을 재는 것이요 욕심을 따름은
사를 재는 것이요"라고 정의하고 있다.
창조적인 것을 갈고 닦아 함축적으로 표현했던 옛학문에는 여과된 내용
외에 넘치는 감성의 낙수가 있었다.
그것이 사회 전반의 문화를 형성하면서 미덕과 미풍의 기반을 만들었다.
조선조 임금 한분은 "자성"이란 자신의 글에서 "선으로써 행하지 못한
것은 성현 앞에 불초인 것은 물론 조상에게도 불초다"라고 적었다.
또 중용의 말씀을 들어 잘못의 원인은 기질에 있고 기질이란 배워 알게
됨으로써 생기는 것으로 그것이 쌓여 공과(공과)가 된다고 했다.
"자성"편을 읽으면 임금이 잘못을 깨닫고 얼마나 후회했으면 자신이
쓴 "어제 자성편"을 부끄럽다고 세상에 내놓지 못하게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글속에 들어있는 잘못에 대한 가르침 역시 바로 자신을 향한
간곡한 지적임을 알게 된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사전에 주의하라는 통치규범 관련 문구도 눈여겨
볼만하다.
"옛사람이 어떻게 만들었는가를 물어서"라는 귀절이 있는가 하면 "덕의
가르침으로 정치를 모의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욕심은 선으로써 여하히
하며""아주 미미한 것도 깊게 통찰하여 현신하고"등도 있다.
진리는 언제나 듣는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
선조들이 세운 고유한 진리를 담은 언어를 소생시킨다면 그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가치와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또 자연에 대한 비유가 많아 삭막한 현대인의 마음을 부드럽고
편안하게 해줄 것임에 틀림없다.
한줄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 거대한 비용을 들이기보다는 옛글과 말을
살려내 한때 모든 사람의 뇌리에 박혔던 반공표어처럼 일상화시켰으면
좋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