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

잘 사는 선진국을 여행할 땐 우리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듯 우리보다
못한 후진국에선 조국에 대한 가슴뿌듯한 자긍심도 갖게 된다.

누구나 여행자가 되면 잠시 잊고 살던 본능적인 조국애가 되살아나는
모양이다.

남미를 찾은 여행객이라면 어떤 감정을 갖게 될까.

아마도 후자의 경우가 대부분일게다.

불과 몇십년전만해도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않을 만한 부를 누렸던 그들.

그러나 이제 경제는 물론 사회전반의 부패도나 빈부격차 등에서 우리보다
훨씬 뒤처진듯한 대부분 남미국가들의 현실을 접하면, 지난 20~30년동안
우리가 이룩한 경제사회적 결실이 결코 과소평가 될 성질이 아님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남미에 대한 이런 일반적인 선입견에 혼란을 주는 경험을, 필자는
최근의 짧은 남미여행에서 하게 됐다.

안데스 산맥 서쪽, 태평양을 끼고 뱀장어처럼 길고 길게 자리잡은 지구
반대편의 나라.

바로 칠레에서였다.

사실 칠레는 그동안 다녀온 다른 대부분 남미국가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자연경관이나 생활관습이 아니라 깨끗한 공직사회가 그랬다.

자유화 개방화 민영화를 표방, 견실한 도약을 이뤄가고 있는 경제구조도
어느 남미국가들보다 선진화된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칠레는 인근국가들에 비해 아주 잘 사는 나라도 아니었기에
감동은 더욱 신선했다.

한나라의 부패도는 대체로 그나라 경제수준과 정비례한다는게 평소 필자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칠레의 1인당 국민소득은 4천8백달러 남짓.

지난 몇년간 지속적인 고성장을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인근 브라질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흔히 공직사회 청렴도를 측정하는 가늠자로 인용되는게 교통경찰이다.

이 나라 교통경찰은 결코 돈을 받고 위반자를 봐주는 법이 없다.

물정모르는 한국인이 돈을 내밀었다가 혼줄난 이야기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교포사회의 망신담이다.

언론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칠레의 기자들은 취재원으로부터는 공짜식사 한끼도 거부한다는게 우리
공관에서 들은 얘기다.

그런점에서 칠레는 남미의 돌연변이 국가라 할만하다.

동남아 중동 동구 등 각 역내국가들이 대부분 비슷한 수준의 사회구조와
부패관습을 가졌음을 감안하면 도미노 이론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격리된
섬 같기도 하다.

칠레는 왜 다를까.

무엇이 칠레를, 아니면 칠레의 무엇이 이처럼 남미사회의 선진사회를
이룩하게 했을까.

한보사태와 현직 대통령차남의 비자금파문으로 이어지는 부패스캔달이
몇달째 계속되는 나라에서온 방문객에겐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들지않을 수
없었다.

문제의 해답은 피노체트 군사정부에서부터 찾아야 했다.

지난 73년 군사쿠테타로 집권한 피노체트가 무자비한 철권통치로 공직
사회의 기강을 잡아간 것이 표면적인 개혁의 출발이었기 때문이다.

여기다 하이메 구즈만이 주도하는 시카고학파의 자유경제주의 이론도
큰 몫을 했다.

정부규제를 혁파하고 일찍부터 공기업민영화에 나선 것이 오늘의 건전한
경제구조를 갖게 된 배경이란 분석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피노체트가 가장 존경했다는 인물이 바로 한국의
박정희 전대통령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한국이 본받아야 할 정부로 칠레를 꼽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정치적으론 같은 독재자대열로 분류되는 피노체트가 박대통령에게 경제
부흥의 비법을 한수 배웠다면 우리는 이제 칠레로부터 깨끗한 정부, 투명한
경제체제를 배워야 할 때다.

때마침 우리사회에서도 부패척결과 함께 정부규제 혁파의 목소리가 높다.

세계 어느나라보다 높은 교육열로 고학력 사회를 이룩한 한국이 지금까지
끝없는 부패의 질곡에서 헤매고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최고의 엘리트집단인 공무원들이 부패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것은 더구나
그들 스스로 자존심의 문제다.

흔히 부패는 규제를 먹고 자란다고 한다.

규제를 그대로 둔 채 아무리 철권통치를 해봐야 깨끗한 정부가 탄생될 순
없다.

수많은 독재국가의 전철과 공산주의의 교훈을 통해 우리는 그같은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점에서 보면 칠레 정부와 경제의 도덕성을 끌어올린 첫번째 공로도
바로 과감한 규제혁파에 있는 것이 아닐까.

박정희 대통령보다 피노체트가 적어도 깨끗한 나라를 만드는데 한수
위였다면 그 해답도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