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금개위의 제안을 토대로 논의되어 왔던 중앙은행제도와 금융감독
체제 개편에 대하여 재경원장관과 한은 총재가 합의하고 대통령이
재가함으로써 정부안이 확정되었다.

일단 각기관의 내부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재경원 장관과 한은 총재가
어려운 합의를 도출했다는것을 일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한은 독립성 확보문제를 둘러싼 오랜 의견대립의 상당부분이
해결되었다는 점에서도 정부안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어려운 결단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이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관계기관간의 의견대립이 상존하고 있으며,이러한 갈등은 국회의
심의과정에서 더욱 첨예하게 표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연 국회가 전문적으로도 논쟁이 심한 이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해갈
것인지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현재의 시점에서는 어느 기관의 어떤 주장이 보다 타당한지를 논하기
이전에 국회가 중점을 두고 심의해야 할 논점들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요구된다.

첫째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에 있어서는 정부와 중앙은행간의 연계관계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적정하게 보장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최대의 쟁점이라고
하겠다.

정부안은 대통령이 금통위원에 대하여 책임을 물어 해임할수 있는 한편
금통위에 대한 재경원 장관의 의안제출권과 재의요구권을 부여함으로써
정부의 제안에 대하여 금통위원이 얼마나 독립성을 확보할수 있을지는
여전히 핵심쟁점으로 남아 있다.

둘째 정부안은 금통위가 정부와 협의하여 설정된 물가안정목표에 대하여
책임지도록 되어 있으나 이러한 방식에 의한 문책이 이 제도가 의도하고
있는바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물가안정을 최고목표로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데
적합한 제도인가 하는 점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자본시장이 전면 개방되는 여건에서 금통위가 조절 가능한 통화관리에
의한 총수요안정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이 제도는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물가안정을 최종목표로 추구하기 보다는 정부의 거시정책을 수용하도록 하는
장치로 작용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한편 성장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은 여건에서 정부가 제시한 물가안정
목표가 중앙은행이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수준보다 높은 경우에는 이 제도는
실효성이 없고, 반대로 성장목표에 비하여 과도하게 낮은 경우에는 금통위가
거시정책 실패의 희생양이 됨으로써 정부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

셋째 금융감독제도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감독기관의 통합안이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효율성 제고를 도모하는 제도적 기반으로서 적합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에 심의의 초점이 두어져야 할 것이다.

금융감독의 목표는 금융산업의 건전성을 확보함으로써 예금자와 투자자를
보호하고 국민경제에 효율적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토록 하는데 있다.

따라서 감독체계는 협의의 감독보다 금융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데
적합하도록 개편되어야 할 것이다.

합의체 독립기관이라고는 하나 행정부를 대표하여 정치권과의 국정 통합을
담당하는 총리산하에 금융감독위원회를 두는 것이 감독기관의 독립성을
확보하는데 적합한지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며, 중앙은행의 최종대부가
기능에 관련된 감독과 검사권의 적합성도 심의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국회가 중앙은행제도와 금융감독체계의 개편안을 심의하는데 있어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문제가 21세기의 우리 경제운영의 주축이 되는
시장주도 또는 민간주도 경제운영체제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시장주도경제에서 금융기관이 시장활동자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심판관의
역할을 한다면, 금융감독기관이 시장활동자의 적합성을 판단하는데 심판관의
역할을 한다면, 금융감독기관은 이 심판관을 감독하는 국민경제의
최종심판관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국회는 관련기관들의 조직적 이기주의나 표를 의식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이 문제가 매우 전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법안심의를
통해 국회가 새로운 시대의 국정의 심의기관으로서 국민이 신뢰할수 있는
전문적 정책심의 역량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회는 우리나라와 거의 같은 시기에 유사한 개편안을 확정한 일본과
영국의 경우가 시사하는 바를 참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본 개편안의 핵심은 대장성의 권한 축소를 통해 금융개혁을 추진하는데
있고, 영국 개편안의 특징은 금융감독체계의 축소를 통해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는데 있다.

특히 영국의 경우는 1982년에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2년반에 걸쳐 전문적
연구를 거치고 다시 비슷한 시간동안 관계기관의 조정을 거쳐 1986년 소위
"빅뱅"에 의한 감독기구 개편을 단행했으며, 이후 10년만에 많은 자율규제
기구로 인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감독기관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금융감독기관의 통합에 대하여 여론의 비판이 강한 것도
사실이며, 노동당이 이미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과 감독기관의 통합을
총선 공약으로 제시했던 만큼 합의의 절차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한편 미국의 경우는 감독체계 문제를 둘러싸고 1백년이 넘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각국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나라 정부안은 합의안이라기
보다는 결단의 산물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정부안이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합의의 문제를 국회의 진지한
심의과정을 통해 확보해야 할 것이며,그것이 바로 국민들이 국회에 대하여
기대하는 바라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금융개혁이 시급한 과제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현정부 막바지의 결단으로 금융개혁을 추진하여 과연
21세기를 대비한 금융제도의 기반을 마련할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수 없다.

일단 정부안으로 많은 부분이 정리되었다.

국회는 원점이 아니라 정부안이 충분히 여과하지 못한 쟁점들을 진지하게
심의함으로써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7일자).